[횡설수설]소에게서 삶의 지혜 배우자

  • 입력 1996년 12월 31일 18시 15분


전통 세시풍속에서는 새해 들어 맞는 첫 축일(丑日)을 「소달기의 날」이라고 했다. 이 날은 나물 콩 등을 삶아서 키에 담아 소에게 먹이고 여름에 소가 기침을 한다고 해서 방아도 찧지 못하게 했다. 쟁기 보습 등 쇠붙이 연장도 다루지 못하게 했다. 이날 하루라도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편하게 쉬게 하겠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가 가장 큰 재산이던 농경시대의 풍습이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인간과 가장 친근하고 유용한 동물이었다. 소는 사람에게 노동력과 고기 우유 기름 가죽을 제공한다. 고대사회에서는 인간을 대신해 하늘에 제사지내는 희생물로 바쳐졌고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알려주는 점술에 이용되기도 했다. 소를 농가의 조상이라고 한 우리나라의 속담이나 사람에 비긴 불가(佛家)의 비유는 소에 대한 인간의 고마움과 친근함을 나타낸 것이다. ▼정축년(丁丑年) 소의 해를 맞아 유순하고 질박한 소의 덕성(德性)을 생각해본다. 근면 성실한 신의의 동물, 서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꾀피우지 않고 묵묵히 맡겨진 일을 해내는 동물의 구도자(求道者), 그것이 우리가 소에 대해 갖는 이미지다. 「칼을 팔아 소를 산다」는 중국의 고사(故事)가 가르치듯 소는 평화와 자비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했다. 동양의 신선도에 소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경박하고 조급한 세태, 새해에는 소의 우직함과 느릿느릿 걸어도 백리를 간다는 소걸음(牛步)을 배웠으면 한다. 모두가 제것 챙기기에 급급한 세태에 남을 위해서 제몸을 바치는 소의 겸손한 희생정신을 본받았으면 한다. 미련한 듯 성실한 쇠고집이 미덕이 되는 사회, 소의 되새김질을 배워 만사를 차분히 반추하는 여유와 신중함이 존중되는 사회가 정축년 소의 해와 함께 열렸으면 한다. 신년을 맞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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