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대통령께 경례』

  • 입력 1996년 12월 19일 20시 43분


얼마전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 한 사람한테서 문의전화가 왔다. 의전업무를 맡고 있다는 어느 사무관이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때 경례절차를 치르자면 「대통령께 대하여 경례」라는구령을 붙이는데, 이때의 「대하여」라는 표현이 사람에게는 쓰일 수 없다는지적이 나와 문제라면서 어느 쪽이 맞느냐는 문의였다. 우선 「대통령께 경례」라고 하는 쪽이 좋겠다고 대답한 후 그 까닭을 잠시 설명하였다. 「대통령께 대하여 경례」라는 표현도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표현이 어쩐지 어색할 뿐 아니라, 쓸데없이 길기 때문에 「대하여」라는 군더더기를 빼는 쪽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간결하여 경제적이라고 풀어보인 것이다. ▼ 말은 쉴새없이 변해 ▼ 실상 이때의 「대하여」는 기원적으로 일본어식 표현을 번역차용한 것이어서 전통적 국어표현으로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그렇다고 이를 틀린 표현이라고 몰아세우기는 어렵다. 비록 번역차용일망정 이 「대하여」는 현대국어에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표현이 맞는지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어떤 표현들이 문법적으로 맞는 지를 알고싶어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문법은 개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만큼 어떤 표현이 맞는지를 문법적 기준만으로 밝히기는 어려울 때도 많다. 거기다가 말은 쉴새없이 변한다. 발음, 단어의 형태나 의미, 통사구조도 모두 변한다. 외국어 문법차용으로 국어문법이 바뀌기도 하며 개개인의 문체나 표현기교로 새로운 국어표현이 생기기도 한다. 자연히 국어표현은 항상 유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럴 때에는 문법성보다 자연성으로 국어표현의 적절성을 가릴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준 역시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때문에 어떤 표현이 맞는지를 가려내라면 우리 국립국어연구원의 학예연구관들도 한결같이 애를 태우는 수가 많다. 우리 연구원에는 「가나다」전화라는 민원창구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국어생활에서 겪게되는 의문을 풀어주는 전화창구다. 이 창구로는 갖가지 질의가 들어온다. 대개는 맞춤법, 표준어, 외래어 표기와 같은 규범문제여서 비교적 쉽게 해답이 나오지만, 모든 표현이 규범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으므로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수도 있다. 더구나 독특한 조어법, 개성적인 문체라도 나오는 날이면 아무리 전문가들이라도 적절한 해답을 찾느라고 상당한 고심을 거듭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각급 관공서나 공공기관, 사회단체나 개개인들 또한 끊임없는 질의를 던져온다. 공문서나 편지를 보내오는가 하면, 때로는 질의편지나 전화가 원장실로 직접 오기도 한다. 그 내용도 가지가지다. 단순한 질의도 있지만 국어의 현실을 걱정하며 보내오는 갖가지 건의, 호소, 충고, 항의, 훈계, 호통에 가까운 뜨거운 내용도 있다. ▼ 세련되어가는 文化 ▼ 어찌되었든 국어생활에 이처럼 관심이 점차 높아진다는 사실만은 반가운 일이다. 국어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야말로 우리의 문화의식이 날로 세련되어 간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는 맞춤법이나 표준어 정도의 기본규범을 지키는 일에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좀더 품격이 넘치는 국어표현을 재창조하는 일에 너나없이 나서야 한다. 그속에서 제나라의 말과 글을 책임지는 명예와 긍지도 쑥쑥 자랄 것이다. 송 민 <국립국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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