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기교파’ 장호연 “사회인야구에서도 타자 홀리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월 25일 05시 30분


장호연 전 감독. 사진제공|장호연
장호연 전 감독. 사진제공|장호연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말은 프로스포츠에서 꽤 자주 접할 수 있는 표현이다. 특정 팀을 대표로 하는 스타를 지칭하는 말로, 그 팀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선수들을 말한다.

자주 접할 수는 있으나 누구에게나 붙는 타이틀은 아니다. 특히 트레이드, 방출 등의 이적 이슈가 많은 야구에서는 특히 그렇다.

장호연(59) 전 신일고 감독은 이견이 없는 베어스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1983년부터 1995년까지 오직 OB(현 두산) 베어스 단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한 전형적인 ‘원 클럽맨’이다.

장 전 감독은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불사조’ 박철순(63·76승)도 하지 못한 베어스 구단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수 100승을 달성한 투수다. 통산 평균자책점 3.26에 109승(110패)을 마크했다. 2018년까지 베어스 유니폼만을 입고 100승을 달성한 투수는 없다. 장원준(129승), 더스틴 니퍼트 등은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에서의 승리 기록이 포함된 100승 투수들이다.

‘공 세 개로 삼진을 잡는 것보다 공 한 개로 맞혀 잡는 게 낫다’는 말은 장 전 감독이 현역 시절 만든 야구계의 영원한 명언이다. 변화구의 대가인 그는 기교파 투수의 전형으로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로 꼽히기도 했다. 기교파 투수로 무려 79완투(역대 3위)를 기록한 장 전 감독에게서 근황과 과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사회인야구? 수준들 상당해”

-소식을 못 들은 지 한참이다. 근황부터 전해 달라.


“내 소식을 궁금해 하는 팬들이 있나(웃음)? 관심을 가져주셨다면 매우 감사하다. 특별히 소식을 감추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바쁜 삶을 보내고 있다. 재능기부 활동을 통해 여러 후배들의 지도자 생활을 돕고, 사회인야구에서 선수로도 뛰며 이 나이에도 계속 야구를 하고 있다.”

-사회인야구라니?

“그렇다. 사회인 1~2부 리그에 속한 팀들에서 투수·타자로 활약 중이다. 내 정도 나이면 프로출신이어도 뛸 수 있는 리그가 꽤 많다. 나이는 있지만 여전히 팀원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는 게 재미있다. 또 그 속에서 코치 역할도 하며 지도자의 경험도 되살려 보고 있다.”

-프로에서만 109승을 거뒀다. 기량 차이가 많이 나지 않나.

“모르시는 말씀, 요즘 사회인야구는 수준이 상당하다. 1~2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는 프로 출신 선수들도 많다. 또 야구인 출신이 아닌데도 순수 본인들의 노력만으로 출중한 기량을 뽐내는 이들도 있다. 프로와 아마 지도자 생활을 한 내가 봐도 당장 프로무대에 가서 통할 자원들이 꽤 있다.”

장호연 전 감독.
장호연 전 감독.

● “구종? 직구에도 변화를 주려 했지”

-공을 여전히 던지니 과거 생각이 많이 나겠다.


“좋았던 시절의 추억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다.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현역 때의 기억이 은퇴 이후에도 제법 오래 간다. 지금도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다 보면 잠실 마운드에서의 기억이 살아나곤 한다.”

-사회인야구에서도 여전히 기교파인가.

“나이도 있으니 파이어볼러가 될 수는 없지 않나(웃음). 여전히 변화구 구사율이 높다. 프로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타자를 어떻게 하면 잘 속일까’를 연구하는 투수다. 다양한 변화구로 타자를 잡아내는 게 아직도 즐겁다.”

-이제야 물어본다. 본인이 던질 수 있는 변화구 구종이 대체 몇 개였나.

“솔직히 말하면 카운트를 해본 적이 없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슬라이더 하나를 던져도 그립을 미세하게 다르게 잡아 변화를 줬다. ‘슬러브’라는 표현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선수들이 많이 던지는 ‘커터’도 그 시절에는 구사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짧은 각으로 꺾이는 변화구를 던지려 하다 보니 그 구종이 생겨버렸다.”

-직구에도 변화를 줬다는 주변 얘기가 맞나?

“그렇다. 사실 포수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나 같이 구종이 미세하게 다른 투수들은 사실 포수와 사인을 정확하게 맞춰 던지기가 힘들다. 나는 직구에도 무브먼트를 최대한 실으려고 했던 투수다. (포수들이) 캐칭에 상당히 애를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호연 전 감독. 사진제공|장호연
장호연 전 감독. 사진제공|장호연

● “독불장군 캐릭터, 반성도 많이 해”

-실력도 뛰어났지만, 성격도 대단했던 것으로 안다.

“칭찬인가(웃음)? 현역 시절 연봉 조정 신청 등 여러 부분에서 내 목소리를 분명히 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 내가 독불장군 캐릭터가 있었던 것도 맞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 때 여유가 없었을까’하는 생각도 한다. 나이가 들어보니 여러 시각이 생기더라.”

-지도자 생활에 있어서도 생각을 많이 해봤을 것 같다.

“물론이다. 사실 역지사지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내 기준에서 선수가 이상한 투구와 훈련을 하면 그게 그때는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 잘못이란 걸 많이 느낀다. 코치는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 선수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한 번만 더 생각했다면 더 좋은 지도자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과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의 ‘장호연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가졌으면 한다. 나는 베어스에서만 선수생활을 은퇴 할 때까지 계속해서 했다. 프랜차이즈 스타란 말이 그 시절에는 그렇게 귀한지 몰랐다. 가끔씩 그 말을 들으면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역 때를 생각하면 그냥 다른 수식어 없이 ‘좋다’는 감정이 또 앞선다. 그 짧은 하나의 말로도 프로 시절의 모든 감정이 좋게 스쳐가곤 한다.”

● 장호연은?

▲ 생년월일=1960년 5월 5일 ▲ 출신교=대건중~충암고~동국대 ▲ 키·몸무게=176cm·80kg(우투우타) ▲ 프로선수 경력=OB(1983~1995년) ▲ 프로통산 성적=346경기(79완투) 109승 110패 17세이브 1805이닝 평균자책점 3.26 ▲ 지도자 경력=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1998~2000년)~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2002~2003년)~효천고 감독(1996~1997년)~신일고 감독(2003~2004년)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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