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도쿄리포트] APBC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기억하는 도쿄돔 최고의 순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1월 17일 05시 30분


주니치 선수 시절 선동열. 스포츠동아DB
주니치 선수 시절 선동열. 스포츠동아DB
야구장은 추억이다. 건조한 건축물은 사람의 스토리가 입혀지는 순간, 따뜻함을 남긴다. 도쿄돔은 1988년 건설된 일본 최초의 돔구장이다. 일본야구의 심장이다. 이 공간이 어느덧 한국야구 역사의 일부가 됐다.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7에 나서는 한국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그 역사의 지분을 가진 주역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채집’하다보니, 한국야구는 도쿄돔에서 기품을 잃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들 덕분에 한국야구가 자랑스러울 수 있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한국인 일본프로야구 선수로서의 도쿄돔

APBC대표팀 선동열 감독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주니치에서 던졌다. 이 기간 98세이브를 성공시켜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렸다. 웬만한 일본 야구관계자는 선 감독을 기억한다. 주니치는 요미우리와 앙숙이었다. 당시 주니치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는 특히 그랬다. 요미우리만 잡을 수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았다. 선 감독은 1999년 7월 22일을 도쿄돔 베스트 경기로 기억한다. “만루 위기가 오자 8회부터 마무리로 투입됐다. 9회초 내 타석이 왔다. 페이크번트 앤 슬래시로 안타를 쳤다. 일본에서 기록한 처음이자 마지막 적시타였다”며 웃었다. 그 이닝에 대량득점이 나와 선 감독은 9회말 교체됐다. 정작 세이브는 못 올렸음에도 도쿄돔만 오면 그 기억부터 떠오른다.

역시 주니치에 몸담았던 이종범 코치도 의외의 경험담을 꺼냈다. “일본 첫해인 1998년으로 기억한다. 도쿄돔에서 2루 도루를 했다. 완전히 세이프였는데 심판이 아웃을 선언했다. 비디오판독이 있던 시절도 아니지 않는가. 바로 헬멧을 집어던지고 항의했다. (퇴장 당할 뻔한 순간) 호시노 감독이 나와서 심판을 밀치더라(웃음).”

반대로 정민철 투수코치는 요미우리에서 뛰었다. 정 코치는 “도쿄돔 외야에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광고판이 여전히 있더라. 같이 뛰었던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지금 감독을 맡고 있는 것도 감회가 새롭다”고 회상했다. 정 코치는 “1군에 많이 못 있었다. (주니치 타자인)이종범 코치보다 도쿄돔 경험이 적다”고 농담하면서도 “요코하마 상대로 완봉승(2000년 6월14일)도 해봤다”는 자랑은 빠뜨리지 않았다.

지난 2006 WBC 당시 도쿄돔에서 플레이했던 이종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2006 WBC 당시 도쿄돔에서 플레이했던 이종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국가대표로서의 도쿄돔

멀게는 한일 슈퍼게임, 가깝게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리고 APBC의 전신 격인 아시아시리즈까지 우리 대표팀 코치들은 저마다 도쿄돔에 족적을 남겼다. 이강철 수석코치는 1991년 한국야구의 첫 도쿄돔 원정 멤버였다. “지붕이 하얀색 이었다. ‘어떻게 뜬공을 잡을까’라고 걱정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제 도쿄돔 천장이 변색됐다. 고척돔 천장이 더 하얗다”며 웃었다.

유지현 코치는 선수로 뛴 한일 슈퍼게임보다 코치로 경험한 2006년 WBC 일본전을 첫손에 꼽았다. “당시 1루 코치였다. 이진영이 ‘국민 우익수’가 된 수비, 이승엽의 8회 역전홈런을 봤을 때 감정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했다. 김재현 타격코치는 SK 시절인 2007년 아시아시리즈에서 도쿄돔을 밟았다. “일본전(주니치) 홈런 등 도쿄돔에서 잘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돔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