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메이저리그 ‘홈런왕’ 베이브 루스, 투수 계속했었더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14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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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오늘(11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19살짜리 투수가 있습니다. 이 투수는 데뷔전에서 클리블랜드 타선을 7이닝 2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데뷔 첫해 성적은 2승 1패, 평균자책점 3.91.

이 투수는 그 해 일정이 모두 끝난 10월 17일 헬렌 우드포드(1897~1929)하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헬렌은 이 투수가 자기 데뷔 팀 연고 도시였던 보스턴에 도착한 첫날 커피숍에서 만난 점원이었습니다.

결혼 후 보스턴 선발 한 축을 꿰찬 이 투수는 18승 8패, 평균자책점 2.44로 1915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1916년에는 23승 12패를 거두며 평균자책점(1.75) 리그 1위에 올랐습니다. 만 21세 이전에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건 이 투수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는 사실상 자신의 월드시리즈 데뷔전이었던 1916년 2차전에서 혼자 14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면서 완투승을 기록했습니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14이닝 완투승을 거둔 건 지금까지도 이 투수 혼자입니다.

이 투수는 1917년에도 24승 13패를 기록하며 만 23세 이전에 2년 연속 23승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건 여전히 이 투수 한 명뿐입니다.

이 투수는 1918년 월드시리즈 때는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06으로 보스턴 마운드를 이끌었습니다. 이 투수는 이해 4차전에서 8회 2실점하기 전까지 월드시리즈에서 29와 3분의 2 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43년이 지난 1961년에야 깨졌습니다.

이 투수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조지 허먼 ‘베이브’ 루스입니다. 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714홈런을 기록한 그 베이브 루스 맞습니다. 보통은 루스를 홈런왕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는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94승 46패, 평균자책점 2.28을 남긴 에이스급 투수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에서 뛰는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23)가 투수와 타자를 겸해 ‘이도류(二刀流)’로 불리고 있는데 루스는 100년 전에 이미 리그 최고 투수이자 리그 최고 타자로 손꼽혔습니다. 지금은 오타니가 대단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루스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단, “투구는 좋아했지만 타격은 사랑했다”는 루스는 결국 나중에는 타격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만약 투수도 계속했으면 어땠을까요?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만약 루스가 뛰던 시절에 지금처럼 지명타자 제도가 있었다면 루스는 투수로는 400승을 거두면서 타자로는 800홈런을 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수비는 하지 않고 타격에만 전념하는 지명타자 제도가 생긴 건 1973년입니다.



루스는 당시 최다였던 714홈런을 치고 은퇴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루스가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삼진을 가장 많이(1330개) 당한 타자도 루스였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루스는 “삼진을 먹을수록 나는 다음 홈런에 더 가까워진다”고 말했습니다. 삼진을 두려워하면 홈런을 칠 수 있을 만큼 강한 타구를 때릴 수 없다는 거였죠.

혹시 작은 손해가 두려워 어떤 일을 망설이고 계시지는 않나요? 그럴 때 루스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루스는 데뷔 첫 타석도, 메이저리그 마지막 타석도 삼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삼진왕이 아니라 홈런왕으로 기억합니다. 게다가 어떤 일을 잘하게 되는 첫 걸음은 분명 어떤 일에 실패해 보는 것입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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