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피플] 이랜드 캡틴 김영광 “가족으로 대해준 팀, 승격으로 보답”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2월 8일 05시 45분


30대 중반인 국가대표 출신 수문장 김영광은 올해 초 서울이랜드FC와 2022년까지 6년 계약연장에 성공하며 눈길을 모았다.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주장까지 맡은 그는 “팀에 감사하다”며 “책임감을 갖고 승격이란 목표를 향해 뛰고 또 뛰겠다”고 다짐했다. 남해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30대 중반인 국가대표 출신 수문장 김영광은 올해 초 서울이랜드FC와 2022년까지 6년 계약연장에 성공하며 눈길을 모았다.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주장까지 맡은 그는 “팀에 감사하다”며 “책임감을 갖고 승격이란 목표를 향해 뛰고 또 뛰겠다”고 다짐했다. 남해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지난 시즌 0점대 방어율 ‘철벽 수문장’
34세 불구 이례적으로 6년 장기계약
“새 감독님 체제에서 팀컬러 뚜렷해져
승격의 감동 생각하며 끝까지 최선을”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서울이랜드FC는 지난달 5일 깜짝 발표를 했다. 국가대표 출신의 베테랑 수문장 김영광(34)과 2022년까지 계약을 연장한다는 내용이었다. 30대 중반의 선수와 5년 이상 장기계약을 하는 것은 프로에서 몹시 드문 일이다. 그러나 서울이랜드는 2006독일월드컵과 2010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한 김영광과의 이별을 한 번도 고려한 적이 없었다. 2017시즌을 앞두고 구단의 주요 과제 중 하나도 궂은 날이나 맑은 날이나 묵묵히 헌신해온 김영광과의 계약연장이었다. 비록 지난 시즌 서울이랜드는 클래식(1부리그) 승격에 실패했지만, 김영광은 온전히 제 몫을 했다. 39경기·32실점으로 0점대 방어율(0.82)을 기록했고, 이 중 17경기는 무실점으로 마쳤다. 제주 서귀포 2차 동계훈련에 앞서 경남 남해에서 부지런히 몸을 만들던 김영광을 만났다. 대화 내내 유쾌했다. ‘행복’, ‘감사’, ‘책임감’ 등의 단어가 끊이질 않았다. “안주하지 않겠다. 그라운드에서 꾸준히 내 몫을 해야 할 책임감이 생겼다. 구단은 나를 좋은 선수, 괜찮은 사람으로 대우해줬다.”

-단순한 재계약이 아니다.

“팀이 나를 단순히 선수가 아니라 가족으로 크게 대접해줬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스스로를 더 가꿔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력으로 보여주고,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 후배들이 주춤할 때 붙잡아주는 그런 선배가 돼야 한다.”

-예전과 지금의 김영광은 어떤 차이가 있나.

“한때 오직 내 자신을 위해 달린 시간이 있었다. 넓게 봐야 했는데, 눈높이도 낮았고 마음가짐도 바르지 않았다. 솔직히 그 때는 그게 옳다고 여겼다. 프로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러나 이제 ‘모두’의 가치를 깨달았다. 소외된 후배들,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선수들이 보이더라. ‘팀=가족’이란 등식을 느끼는 눈과 마음이 열렸다.”

-희생과 헌신을 알게 됐다는 의미인가.

“맞다. ‘함께 가야 한다’는 과거 지도자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새삼 깨닫고 있다. 과거에 나름 잘 나간다고 했을 때, 왜 교만했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혼자 가면 분명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 모두가 한 길을 걷는 ‘함께’라는 가치를 우리 후배들도 빨리 알았으면 한다.”

전남 시절 김영광.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전남 시절 김영광.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프로 데뷔 당시 세운 목표까지 얼마나 와있나.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고 1년을 기다렸다. 꼭 뭘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일단 ‘첫 경기를 최대한 앞당기자’는 심정으로 날마다 개인훈련을 했다. 솔직히 갓 입단했을 때는 정말 암담했다. 한창때의 노상래(현 전남 드래곤즈 감독) 형님이 나를 골문에 세우고 슛 연습을 했는데, 제대로 막아낸 적이 없었다. 움직일 새도 없이 공이 골네트를 출렁이는 장면을 보면서 어찌나 절망스러웠는지…. 그런 강한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프로의 슛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연구하고 노력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래도 충분히 성공했다.

“그저 생존하자는 생각이었다가 출전 횟수를 차츰 늘려가며 ‘기왕이면 넘버원이 되자’는 마음을 품었다. 처음 받은 유니폼 등번호가 41 이었다. 선수단에서 꼴찌였다. 이를 ‘1번으로 줄여보자’는 생각을 했고, 2군 시절부터 두려움 없이 뛰면서 대비했다.”

2002년 전남 유니폼을 입은 김영광은 이듬해 11경기에 나서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탄탄대로였다. 2007년 울산현대로 이적해 에이스로 활약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2013년을 기점으로 후배 김승규(27·빗셀 고베)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출전시간이 크게 줄었다. 그는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승규도 오래 기다렸다. 대단한 실력에 비해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내가 길을 터주는 게 옳았다. 팀을 옮겨야 했다.” 자신 또한 비슷한 과정을 거쳤기에 오히려 순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서울 이랜드FC 김영광.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서울 이랜드FC 김영광.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목표는 반드시 이뤄야 하는 성격인지.

“목표를 만들고 이루면서 다음 목표를 세우는 편이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목표를 이루고, 다시 목표를 만들고, 이런 상황이 차츰 쌓여 실력이 되고, 시너지가 됐다. 프로에서의 발걸음도 그랬고, 연령별 대표팀부터 단계별로 꾸준히 성장한 ‘태극전사 김영광’도 그랬다. 운도 따랐지만, 몸과 마음이 준비돼 있었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A대표팀 태극마크를 달면서 잠시 주춤했다. 여기서 또 ‘넘버원’으로 달려갔어야 했다. 물론 나는 정말 많은 혜택을 입고 얻은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올해 서울이랜드는 어떨 것이라고 예상하나.

“(김병수) 감독님이 새로 오시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팀 컬러가 뚜렷해질 것 같다. 의문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그런 축구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플레이가 계속 나올 것 같다. 우리에게는 똑같은 목표가 있다. 승격이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꿈, 벅찬 환희의 감정을 느끼며 부둥켜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마지막 경기를 생각하며 뛰고 또 뛰려고 한다.”

남해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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