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종합 4위는 파란 눈의 태극전사들 손에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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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의 아일렌 프리슈(25)는 촉망받는 여자 루지 선수였다. 2012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2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 국가대표가 되는 문은 너무 좁았다. 한국 양궁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태극마크 달기가 더 힘든 종목인 것처럼 독일에서는 누워서 타는 썰매 종목인 루지가 그런 종목이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경쟁력 있는 루지 선수를 원했던 대한루지경기연맹은 프리슈에게 귀화를 권유했다. 때마침 독일 출신 슈테펜 자르토어 감독이 한국 루지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었다.

올림픽 출전을 꿈꾸던 프리슈는 고민 끝에 한국 귀화를 결심했다. 귀화 이전부터 한국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하던 그였다. 지난 연말 특별 귀화의 마지막 관문인 법무부 면접을 통과한 그는 5일부터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다. 귀화 후 첫 대회 출전에서 그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그는 "평창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서 내게 새로운 기회를 준 한국에 보답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종합 4위는 파란 눈의 태극전사들 손에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 한국은 역대 최다인 71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2018년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 대회에는 130명 안팎의 한국 선수가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가운데 특별 귀화를 통해 한국 국가대표팀이 된 태극전사는 10%가 넘는 15명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활발한 귀화가 이뤄진 종목은 아이스하키다. 이미 6명의 남자 선수가 귀화해 활발히 빙판을 누비고 있다.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EIHC)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전적에서 1승 1무 11패로 밀리던 헝가리를 결승에서 3-2로 이기며 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여기엔 귀화 선수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겨울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남자 아이스하키는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르며, 관중도 가장 많이 동원하는 종목이다. 2010년 밴쿠버 대회 때는 전체 관중 수입의 절반 가까이가 아이스하키에서 나왔다. 하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평창 겨울올림픽 아이스하키에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다. 세계 수준과의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귀화 선수 영입을 통해 전력을 강화할 경우 출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대한아이스하키연맹은 차근차근 귀화 선수 프로젝트를 시행해 왔다.

사상 첫 피겨스케이팅 전 종목 출전(남녀 싱글, 페어, 아이스댄스)을 노리는 피겨 대표팀은 알렉산더 개멀린(아이스댄스)과 테미스토클레스 레프테리스(페어·이상 미국)의 귀화를 추진하고 있다. 개멀린은 민유라와, 레프테리스는 지민지와 짝을 이루게 된다. 이들 조가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면 한국은 소치 대회부터 시작된 팀 이벤트(단체전)에도 출전할 수 있다.
대한바이애슬론연맹은 4명의 러시아 출신 선수들을 귀화시켰거나 귀화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애슬론 강국으로 통했던 러시아에는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이후 선수 풀이 더욱 두터워져 자국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한 수준급 선수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안나 프롤리나(한국명 서안나)는 지난해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2016 바이애슬론 여름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스프린트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한국은 평창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 등 총 20개의 메달을 획득해 종합 4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팀의 성적은 이들 귀화 선수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평창 이후, 먹튀는 없다

일각에서는 귀화 선수들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특별 귀화는 이중국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올림픽이 끝난 후 그냥 자기 나라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선택한 선수들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진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일례로 2008년부터 안양 한라에서 뛰고 있는 브락 라던스키는 한국 생활만 10년 가까이 했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칠 각오를 하고 있는 그는 은퇴 후에도 한국 아이스하키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생각이다.

라던스키와 함께 귀화를 추진했던 브라이언 영(하이원)은 귀화 시도 첫해 대한체육회 추천을 받지 못했다. '재수'를 통해 귀화에 성공했던 그는 이후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한국 생활 8년째인 그는 한글도 잘 읽고 한국어로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지장이 없다.
6개월째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프리슈 역시 이렇게 말했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한국 루지 발전을 위해 제가 갖고 있는 경험과 정보를 전수하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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