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외야석] 그라운드 안에는 금수저가 없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6월 15일 05시 45분


kt 유민상의 아버지는 유승안 경찰야구단 감독, 친형은 LG에서 뛰고 있는 유원상이다. 유민상은 환경적으로는 야구인의 피를 물려받은 금수저이지만 프로의 세계는 실력으로 승부해야한다는 점을 잘 안다. 사진제공| kt위즈
kt 유민상의 아버지는 유승안 경찰야구단 감독, 친형은 LG에서 뛰고 있는 유원상이다. 유민상은 환경적으로는 야구인의 피를 물려받은 금수저이지만 프로의 세계는 실력으로 승부해야한다는 점을 잘 안다. 사진제공| kt위즈
■ kt 유민상의 홀로서기

두산 유망주서 kt 이적…주전 찬스
‘21경기 타율 0.319’ 1루수로 활약
아버지 유승안 감독·형 LG 유원상
특혜? 나의 무기는 ‘출루율 0.429’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는 수저계급론. 끔찍한 신조어다. 애초부터 젊은이들의 꿈을 짓밟는, 살벌한 시대상을 반영한다.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장면은 비록 금전적인 면에서 흙수저 태생이지만 올바른 인성 교육을 받고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로 성장하는 것이다. 더불어 한 분야에서 성공까지 거둔다면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

미국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자본주의 국가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하게 태어나더라도 사법고시(2017년 폐지되지만), 행정고시 등을 통해 입신양명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큰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명문 대학도 쉽게 가고 변호사도 척척 된다. 반대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성공하기에는 학비가 너무 비싸다.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가장 극적으로 이뤄지는 영역은 프로스포츠다. 도미니카공화국의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태어난 소년이 미국에서 갑부가 될 수 있는 무대가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다. 어두운 뒷골목 할렘에서 방황하던 청소년도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영웅이 된다.

KBO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 상당수는 한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다. 초대형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이 사회 전체적으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이 크다. 그러나 역경을 이겨내고 스스로 부를 이뤄낸 부분만큼은 인정받을만하다. 야구는 돈이 많이 드는 종목이다. 회비를 못내 눈칫밥을 먹고, 찢어진 유니폼을 꿰매 입고, 너덜너덜해진 스파이크와 글러브를 끼고 훈련해 지금 위치에 오른 그들은 비록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그라운드에서 자수성가를 이뤘다.

프로스포츠 선수 중에도 분명 금수저가 있다. 유명 선수 출신 아들, 현역 감독이나 코치의 아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성장과정을 보냈고, 분명 기회도 더 많이 보장받았다.

kt 유민상(27)은 아버지의 미국 코치 연수를 따라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 유승안 경찰야구단 감독은 현역시절 스타플레이어였고, 프로팀에서 감독(2003∼2004년 한화)까지 올랐다. 형 유원상(30·LG)은 2006년 한화에서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엘리트 선수며, 201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서 뛰었다. 유민상을 프로야구 무대에서 금수저라고 부르더라도 이견을 달 여지가 없다. 그러나 프로야구리그라는 폐쇄적인 사회는 금수저에게도 냉혹한 곳이다. 아무리 감독이 아버지라고 해도, 아니 할아버지가 구단주라도 실력에서 뒤지면 경기를 뛸 수 없다. 유민상은 그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두산에서 유망주로 인정받았지만 뛸 자리가 없었다. 5월 14일 노유성과 트레이드는 인생일대의 기회가 된 것 같다.(유민상은 김상현의 부상 속에 kt 주전 1루수를 맡아 12일까지 21경기에서 타율 0.319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군에서 제대한 뒤 1군에서 15경기를 뛰었다(38타수 10안타 1홈런 6타점). 경찰야구팀에서 공을 보는 훈련을 많이 하면서 스스로 큰 성취감을 느꼈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두산은 1군, 퓨처스 팀 모두 잘 하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다. 어떻게 경쟁을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kt로 트레이드 됐다.”

-두산 내야진은 리그 최정상급이다. 1루 자원도 여러 명이다. 물론 kt에 왔다고 1군 선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선수로 큰 기회다. 아버지가 굉장히 기뻐했겠다.

“‘더 열심히 해라’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아버지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만큼 다른 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더 성실하게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짐해왔다. 언젠가는 분명히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 잡지 못하면 다시 그 기회를 만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도 그 점을 많이 걱정하셨다. 지금은 경기를 자주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과정이다. 누구라도 실력이 안 되면 경기를 뛸 수 없는 곳이 야구장이라는 것을 그동안 매일 느꼈다.”(조범현 kt 감독은 트레이드 이후 유민상이 퓨처스리그 4경기 15타수 8안타 타율 0.533, 1홈런, 6타점을 기록하자 1군으로 올렸다. 인터뷰 전 ‘유민상이 기대이상 잘 하고 있다’고 묻자 ‘아직 더 봐야 한다’고 길지 않게 답했다)

-아버지는 유명 선수였고 프로 1군 감독이었다. 지금도 경찰야구단 감독이다. 형도 프로 선수다.

“아버지는 그라운드에서는 굉장히 엄한 분이지만 집에서는 매우 따뜻한 분이다. 그렇지만 항상 바쁘실 수밖에 없었다. 형도 야구를 시작했고 집안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유민상의 친어머니는 유민상이 열 살 때인 1999년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외로워서 ‘나도 야구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포수 출신이지만 한번도 ‘어떤 포지션을 해라’고 권유한 적은 없다. 형과 함께 자연스럽게 자기가 제일 잘하는 자리로 간 것 같다.”

-형은 투수다. 형과 1군 무대에서 맞대결이 이뤄진다면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다.

“(밝게 웃으며)정말 기대된다. 퓨처스리그에서는 3번 만난 적이 있다. 안타는 한번 쳤다. 1군에서 만나면 ‘진짜 잘 쳐야지’하는 마음에 가슴이 두근두근 할 것 같다. 형과는 거의 매일 통화한다. 마운드에 선 형을 타석에서 만난다면 형도 최고의 공을 던지고 동생도 열심히 스윙했으면 좋겠다.”

-kt에서 영입한 이유 중 하나는 출루 능력이다. 0.429의 출루율(12일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스스로 홈런 능력이 뛰어난 타자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 하나라도 뛰어난 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경찰에서 뛸 때 공을 많이 보는 훈련을 열심히 했다. 타석에서 절제와 인내를 많이 느꼈다. 정말 치고 싶은 유혹이 많지만 볼이 될 확률이 높은 공이라면 꾹 참아야 볼넷을 고를 수 있었다. 평생 홈런왕은 되지 못하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출루율 1위는 꼭 하고 싶다. 대학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했고 군대까지 다녀왔더니 벌써 20대 후반이 됐다. 늦었을 수도 있지만 더 노력하고 준비해 꼭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다.”

kt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은 모두 “민상이는 참 밝고 낙천적이다”고 말했다. 팀원이 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지만 클럽하우스에서 금세 하나로 녹아들었다. 유민상의 포지션 1루는 거포의 땅이다. 경쟁은 치열하고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곳이다. 유민상은 프로야구는 금수저도 이겨야 살아남는 가장 순수하고 평등한 곳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전략으로 현대 야구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능력 중 하나인 출루 1위를 꿈꾸고 있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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