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외야석] 고교스타, 왜 프로서 좌절하는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5월 3일 05시 45분


이종운 전 롯데 감독이 ‘고교스타는 프로에서 왜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전 감독은 프로야구 코치·감독은 물론 고교와 청소년대표 사령탑을 역임한 야구인이다. 스포츠동아DB
이종운 전 롯데 감독이 ‘고교스타는 프로에서 왜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전 감독은 프로야구 코치·감독은 물론 고교와 청소년대표 사령탑을 역임한 야구인이다. 스포츠동아DB
■ ‘고교야구 13년·롯데 1년’ 이종운 전 감독에게 물어보니…

처음겪는 프로의 높은 벽에 충격
선수의 정보 전달 시스템도 부족
이대호도 타자 변신 때 오락가락

이종운(50) 전 롯데 감독에게 연락을 한 건 최근 여러 명의 야구인에게 같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공통된 생각은 이렇다.

“그 양반이 워낙 자기 자랑을 안 해서 그렇지. 이종운 당시 롯데 트레이너 코치가 없었으면 지금의 메이저리그 타자 이대호는 없다. 2차 1순위 핵심 유망주 투수(이대호)를 놓고 누가 감히 1군 코치와 구단에 ‘투수보다는 타자가 성공 확률이 훨씬 높다’는 말을 할 수 있었겠나.”

깊이 생각을 해봤다. 이 전 감독은 2002년 지바 롯데에서 연수를 마치고 롯데에서 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한 뒤 경남고 감독을 맡아 무려 13년간 활동했다. 다시 롯데로 돌아와 3군과 퓨처스 그리고 1군 주루 코치를 거쳐 2015시즌 롯데 감독을 맡았다.

프로에서 11년을 선수로 뛰었고 고등학교 감독 13년에 프로 코치와 청소년대표 사령탑, 그리고 단 한해 뿐이지만 프로야구 1군 감독까지 경험한건 이 전 감독이 한국야구 전체에서 유일했다.

프로야구는 수년 째 고교특급 유망주의 1군 실패를 겪고 있다. 정상급 선수들이 연이어 해외로 떠나고 있지만 뒤를 이을 KBO리그의 간판이 되어야할 새로운 스타 탄생은 극심한 가뭄이다.

이대호도 2001년과 2002년 롯데에서 특급 유망주 투수였지만 구속은 140km를 넘지 못했다. 책임이 두려워 아무도 타자 전향을 권유하지 않았다면 투수 이대호는 프로에서 실패를 맛봤을 수도 있다.

아마추어 지도자와 프로야구 코치와 감독을 경험한, 그리고 최근 미국 마이너리그 팀(시카고 컵스)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이 전 감독에게 고교 특급 유망주들이 프로에서 실패하는 원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매년 고교 야구를 지배한 유망주들이 프로에 입단하지만 성공확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낮은 순위에서 지명돼 프로에서 다시 꽃을 피운 스타들이 더 눈에 띄는 것 같다.

“고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오랜 시간 한 사람으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보다 실패를 경험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 아닌가. 항상 자신이 최고였지만 열아홉, 스무 살 나이에 겪는 패배감과 좌절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까.”

-고교 사령탑 시절 최고의 감독이었다. 우승 횟수 뿐 아니라 많은 선수들을 프로에 보냈고 대학 진학률도 높았다. 청소년대표 감독도 했는데 당시 세계청소년선수권(2008년) 멤버 중 상당수는 프로 1군에 없다.

“1차 지명, 2차 1번 이렇게 프로에 들어온 친구들은 팀의 보배다. 스스로도 자부심과 성공에 대한 의지가 크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이 프로다. 프로에서만 10년, 15년을 야구한 기존 선수들과 아직 골격도 완성되지 않은 신인이 경쟁해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프로팀 입장에서 보면 빨리 쓰고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빨리 1군 캠프로 데려가고 싶은 것이 자연스럽다.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캠프에서 연습경기에도 올린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프로의 벽에 막힌다. 이 때가 매우 중요한 순간인 것 같다. 그동안 그렇게 야구를 잘했고 프로에도 화려하게 입단했는데 큰 좌절을 겪게 되는 거다. 이제 열아홉, 스무 살인데 얼마나 충격적이겠나. 이후 다시 잘 보이려고 무리를 하다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수 없이 봤다. 스스로 ‘아직 시간은 많다’며 슬기롭게 극복하는 경우는 이후 상당수가 성공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패 확률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고교에서 감독을 할 때 선수를 관찰하러 온 스카우트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했었다. 선수의 장점과 부족한 점 그리고 성격과 여러 상황 등 3년간 지켜본 모든 것을 열심히 설명했다. 프로 지도자들에게 그러한 정보들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여러 정보를 갖고 신인을 만났을 때와 기본적인 프로필만 보고 대면했을 때 지도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 사실 굉장히 착하고 열정적인 선수인데 새로운 환경이 낯설어 당황하는 모습이 반대로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역시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 프로에서 지도자를 해보니 고교 감독의 여러 정보가 프로 지도자들에게 잘 전달이 되니 않더라. 사실 매우 민감한 상황이다. 고교 감독이 ‘이 선수는 이런 훈련을 시키면 더 좋아질 것 같다. 이런 부분은 좀 약하지만 이 쪽은 강하다’고 프로 지도자들에게 쉽게 말 못한다. 중간에서 스카우트들도 그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롯데에서 짧은 시간 감독을 할 때 스카우트를 스프링캠프로 불렀다. 신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 일단 안면이 있고 자신을 그나마 잘 알고 있는 팀에서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교 지도자들의 선수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 프로에 정보로 잘 가공돼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여전히 이대호(시애틀)의 타자 변신에 이종운 당시 코치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대호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지금 위치에 간 거다. 내가 무슨 역할을 했겠나. 기억나는 점은 당시 이대호의 고교 지도자들에게 투수가 아닌 타격 능력에 대해 자주 말을 들었던 점이다. 직접 고교 야구선수 이대호의 타격을 본 적도 있다. 당시 롯데 2군 트레이너 코치로 신인 이대호를 만났다. 투수 유망주인데 폼이 참 예뻤지만 구속이 130km대였다. ‘체격이 더 커지면 구속이 늘어날 까?’그런 생각과 함께 ‘고교 때 타격이 참 좋았는데’라는 기억이 떠올라 몰래 2주간 2군 훈련이 끝난 후 배팅 볼을 던져 줬다. 10개 중 7개가 홈런이었다. 망설이다가 타격 능력에 대해 보고했다.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졌다. 얼마 후 1군에 투수로 올라간 이대호가 부상을 당해 다시 방망이를 잡았다. 당시 1군 코칭스태프의 판단은 당연한 거다. 2차 1순위 투수를 입단 2년 만에 타자로 바꾸자는 것에 대해 누가 찬성하겠는가. 고교시절 데이터로 다 담을 수 없는 이대호의 타격 자질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거다.”

-유망주가 프로에 안착하는데 기술적인 문제점은 없을까.

“기술적인 측면의 정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과거에는 유망주 한 명이 들어오면 한두 명이 손을 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것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스스로 정립될 시간을 준다. 미국에서 짧은 시간 연수를 하며 느낀 점은 이 곳은 아무리 특급 유망주라고 해도 큰 기술적인 어려움을 만났을 때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낼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는 점이다. 물론 선수층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더 긴 수련 시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코치들의 인내심에 많은 것을 배웠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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