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불혹의 주희정 “아직은 넥타이보다 유니폼이 좋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25일 05시 45분


프로농구 삼성 포인트가드 주희정이 스포츠동아 창간 8주년 기념 축하 메시지가 담긴 친필사인을 들어보이고 있다. 2008~2009시즌 정규리그 MVP에 올랐던 주희정은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KBL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 중이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프로농구 삼성 포인트가드 주희정이 스포츠동아 창간 8주년 기념 축하 메시지가 담긴 친필사인을 들어보이고 있다. 2008~2009시즌 정규리그 MVP에 올랐던 주희정은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KBL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 중이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프로농구 19년차 주희정이 사는 법

피나는 노력과 열정으로 버틴 농구인생
후배들에게 몸으로 보여주려고 더 최선

식스맨 경험…괴로웠지만 성장의 계기
늘 뒤에서 내조해준 아내가 큰 힘 됐죠


프로무대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리그의 흐름, 승리하는 방식 등이 끊임없이 변한다. 정상급의 기량을 지닌 실력자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무대다. 프로스포츠에서 ‘롱런’이 어려운 이유다. 국내프로농구에는 19시즌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흐르는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레전드’가 있다. 바로 삼성 포인트가드 주희정(39)이다. 한국농구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수준급 포인트가드를 배출해왔다. 강동희∼이상민∼김승현(이상 은퇴)∼김태술(KCC)로 이어지는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이 있을 정도다. 주희정은 ‘6년 주기설’에서 벗어나 있다. 그에게는 강동희 같은 부드러움도, 이상민 같은 세련미도, 김승현 같은 천부적 센스도 없다. 열정과 성실성이 주희정의 최대 무기다. 끊임없는 노력과 농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19시즌을 버틴 그는 시대를 아우르는 레전드가 됐다. 스포츠동아가 탄생한 때인 2008∼2009시즌 남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기도 한 주희정을 만나봤다.

-6강 플레이오프(PO) 탈락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6강 PO) 패배의 아쉬움은 빨리 털어내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잘 쉬고 있다. 최근에는 아내와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다녀왔다.”

-삼성 복귀 첫 시즌에 불혹의 나이로 주전 포인트가드 역할을 했다.


“일단 나를 믿고 영입에 나선 구단과 이상민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부터 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지난해 삼성에 다시 돌아왔을 때 주전으로 뛰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팀에서 맡기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 주희정이 아직 죽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전보다는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먼저 생각했다. 이호현, 박재현 같은 후배들의 성장을 돕고 싶었다. 후배들에게 내 마음이 얼마나 전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백 마디 말보다 몸으로 보여주고 함께하고 싶어서 나도 최선을 다해 훈련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2∼3년 뒤에는 분명히 발전된 모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8∼2009시즌 MVP가 됐는데, 기량이 여전하다. 커리어를 통틀어 그 때가 전성기였다고 생각하는가.

“기록적으로는 그때가 좋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삼성에서 우승했을 때(2000∼2001시즌)가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KT&G(현 KGC) 때는 양희종, 이현호, 김일두 같이 궂은일을 하는 선수가 많아서 나랑 마퀸(챈들러)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록이 잘 나왔다. 삼성 때는 문경은 감독님(SK)을 비롯해 아티머스 맥클래리 등 공격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아 역할 분배가 됐다. 그래서 기록 부문에선 KT&G때가 나아보이는 것뿐이다.”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2008∼2009 시즌 이후 8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

“나이가 들었고 이제는 40분 풀타임을 안 뛴다는 것? 하하. 그 때는 몸으로 농구를 했다면, 지금은 몸이 안 따라주니까 머리를 많이 쓴다. 예전 같으면 상대 압박수비가 와도 혼자 해결하는데, 지금은 버겁다. 보조해줄 수 있는 동료가 있어야 편하다. 또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때는 애가 둘이었는데, 지금은 넷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자리에 있다가 SK에선 식스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출전시간에 대한 욕심이나 마음을 내려놓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욕심이라…, 맞다. 힘들었다. SK에 있을 때 정말 많이 내려놓았다. 매 경기 40분 가까이 뛰다가 20분 밑으로 출전시간이 줄어들었을 때는, 순간마다 흐름에 따라서 맥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겠더라. 은퇴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다가, 이왕 식스맨을 하게 됐으니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고 끝내자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 식스맨 역할을 잘했던 선수들의 영상을 보고, 나름대로 메모도 하면서 연구했다. KT&G에 있을 때 유도훈 감독님(전자랜드)이 식스맨들을 따로 훈련하던 방식을 떠올리면서 훈련했고,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식스맨상(2013∼2014시즌)도 운 좋게 받을 수 있었다. ‘주희정의 농구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출전시간은 줄었지만 열정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그 와중에도 발전하려고 노력했다. 그 때는 괴롭고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농구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모두에게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늘 준비가 돼야 한다. 후배들에게도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힘들었던 시기에 조언을 해준다거나 힘이 된 사람이 있는가.

“아내가 많은 힘이 됐다. 아이가 넷이라 돌보기도 힘들 텐데, 나까지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면 더 힘들어할까봐 집에 가면 농구 이야기를 잘 안하는 편이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 늘 나를 이해해주려고 했다. 나 모르게 절을 찾아가기도 했더라. 아내에게 늘 고맙다. 조언해준 친구들도 있다. 스포츠동아에서 일하고 있는 최용석 기자가 대학시절 같은 학과 친구다. 체육관에서 둘이 1대1을 하거나 슈팅 연습을 했는데, 시간이 흘러서 나는 프로선수, 그 친구는 기자로 다시 만났다. 내가 힘들거나 농구가 하기 싫어졌을 때 조언을 해주기도 했고 묵묵히 챙겨줬다. 40년을 살면서 평생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벗을 둔 것 같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잊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늘 꾸준히 열심히 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하셨다. 꾸준히, 열심히, 열정을 가지라는 것이 흔한 말인데, 할머니의 그 말이 지금의 나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PO 기간에도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과 밥을 먹고 각별하게 챙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KT&G에 있을 때는 오로지 경기에만 포커스를 뒀다. 내가 잘해야 팀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벤치멤버 생활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최수현, 김태형과 같은 후배들은 엔트리에 없어서 경기장에서 몸도 못 풀지만, 팀 훈련 때는 없어선 안 될 친구들이다. 상대팀 선수 역할을 잘해줬기 때문에 주축선수들이 수월하게 훈련했다. 그 친구들이 경기에 못나간다고 불만을 품는다면, 팀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다행히 팀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 고마웠다. 중간 역할을 하고 있는 (이)시준이도 출전시간이 많이 줄었는데, 늘 팀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나를 도와준다. PO 때 야간에 잠실체육관까지 가서 운동했는데, 그 때 (최)수현이, (김)태형이까지 볼을 잡아준다고 같이 나서더라. 시준이, (이)관희도 같이 체육관에 가서 서로 볼을 잡아주면서 훈련했다. 비록 4강 PO에 나가지 못했지만, 후배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동기인 (조)동현(kt 감독)이가 감독이 됐을 때 솔직히 부러웠다. 하지만 마흔의 나이에 어린 선수들과 함께 같은 유니폼을 입고 힘든 경기를 이겼을 때의 쾌감은 넥타이를 매고 승리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아직은 유니폼 입고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 좋다.”

● 주희정은?

▲생년월일=1977년 2월 4일
▲키·몸무게=181cm·76kg
▲출신교=토성중∼동아고∼고려대 중퇴
▲프로 경력=1997년 나래(현 동부) 입단
▲프로통산 성적=978경기 출장(통산 1위), 8489득점(통산 5위), 3388리바운드(통산 4위), 5317어시스트(통산 1위), 1487스틸(통산 1위)
▲수상 경력=신인상(1997∼1998시즌), 정규리그 MVP(2008∼2009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2000∼2001시즌), 베스트5 4회, 수비5걸 3회, 우수후보선수상(2013∼2014시즌), 이성구기념상(모범선수상) 2회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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