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메시의 창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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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인공지능(AI)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KAIST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AI는 메시가 아니다”고 말했다. AI가 발전해도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허사비스 CEO가 인용할 정도로 메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축구 선수로 꼽힌다. 축구 팬이라면 메시를 축구의 신(神)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펠레와 베켄바워, 마라도나 등 그동안 축구 황제로 불린 선수들은 꽤 있었다. 하지만 신으로 불린 축구 선수는 메시가 처음이다.

실제 메시는 그라운드에서 이전의 황제들을 압도하는 기량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메시의 볼 다루는 기술이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정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메시의 라이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기술만 놓고 보면 메시에 뒤처지지 않는다. 차이점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들도 볼을 가진 메시가 어디로 움직일지, 어디로 볼을 패스할지를 몰라 쩔쩔맨다. 볼을 몰고 질주하는 메시를 멈추기 위해서는 반칙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축구 전문가가 거의 없을 정도다.

메시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축구계에서는 메시의 창의적인 플레이라고 부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메시의 방향 전환과 슛, 패스는 모두 창의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역대 어느 선수도 흉내 내지 못한 창의력이 메시를 황제를 넘어 신의 경지로 올려놓은 것이다.

메시 못지않게 뛰어난 창의력을 보여준 선수로는 골프의 필 미컬슨이 꼽힌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 때 미컬슨은 항상 우즈의 독주를 막을 선수로 평가받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홀을 공략하는 그의 창의적인 플레이 때문이었다. 2013년 브리티시오픈에서 미컬슨은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창의적인 샷을 보여줬다. 그린과 붙은 가파른 내리막 경사의 에지에서 미컬슨은 그린을 등지고 서서 볼을 자신의 머리 위로 높이 띄우는 샷을 했다. 공중에 뜬 볼은 강한 바람에 밀리며 그의 등 뒤로 날아가 그린 위의 핀 가까이에 떨어졌다. 같은 대회에서 드라이버 2개를 번갈아 사용하고, 대회 코스에 따라 사용하는 웨지의 각도를 다양하게 바꾼 것도 미컬슨이 처음이다. 지금은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컬슨이 처음 시도할 때만 해도 동료 선수들까지 놀라게 한 창의력의 산물이었다.

메시와 미컬슨의 창의력은 타고난 유전자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자라난 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

메시를 길러낸 스페인 프로축구 FC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어른들의 불간섭’이다. 코치의 역할은 지시자가 아닌 조력(助力)자다. 당연히 부모의 간섭도 철저히 차단한다. 5년 전 한국을 방문해 유소년 캠프를 열었던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의 기술감독은 “어른들이 불필요하게 간섭하면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릴 수 없게 돼 메시 같은 창의성 있는 선수가 나타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 유소년들은 전반적으로 경직돼 있고 창의력이 부족한 게 단점이다”라며 “바르셀로나의 축구 스타일을 배우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유소년기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창의력을 키워주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조언했다. 미컬슨의 부모 역시 오른손잡이인 미컬슨에게 왼손 스윙 대신 오른손 스윙을 권했지만 미컬슨이 거부하자 더이상은 강요하지 않았다.

알파고 덕분에 학부모들 사이에서 창의력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관심이 지나쳐 간섭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메시#알파고#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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