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희 “해설가는 냅다 지르면 되지만 감독은 다르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5월 28일 06시 40분


V리그 사상 두 번째 여성 사령탑인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용인 훈련장에서 배구공을 품에 안고 미소를 지었다. 용인|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V리그 사상 두 번째 여성 사령탑인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용인 훈련장에서 배구공을 품에 안고 미소를 지었다. 용인|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 V리그 흥국생명 새 사령탑 박미희 감독

선택에 따른 결과 수습·책임까지 고려해야
아직 결정에 확신 부족…리더의 고충 실감

여자 사령탑 길 열어준 조혜정 선배께 감사
섬세한 기술배구로 남자 감독들과 차별화

센터 공격비중 높이고 훈련만큼은 독하게
훈련 이외 시간이 피곤하다는 말 안 들을 것


프로배구 V리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7일 흥미로운 결정을 내렸다. 여자배구의 베테랑 지도자 류화석 감독 후임에 박미희(51) KBSN 해설위원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박 감독은 1982년 세계청소년여자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한국 여자배구의 아이콘이었던 스타였다. 빼어난 센스와 악착같은 플레이로 1980년대 한국 여자배구의 흥행과 성적을 이끌었다.

현역 은퇴 이후 해설자로 혹은 강단에서 배구와 가까이 있었지만 지도자 경험은 없다. V리그 최초의 여성 지도자였던 GS칼텍스 조혜정 감독의 실패를 보고도 선택한 두 번째 여성 감독이다. “두렵지만 운명으로 알고 후배들을 위해서 잘하고 싶다. 감독에 성(性)은 없다”는 그를 21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흥국생명 훈련장에서 만났다.

-감독 제의가 왔을 때 많은 고민을 했을 텐데.

“10명에게 물어보면 8명은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타이밍이 언제인지 궁금했다. ‘좋은 때라면 내게 기회가 왔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결국 ‘지금 하나 나중에 하나 공을 만지는 것은 비슷하다. 앞날은 모르겠지만 지금 타이밍에 기회가 왔다면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혜정 선배에 전화했더니 ‘어려운 일을 맡았구나. 두려움은 있겠지만 해볼만한 일이다’라고 격려해 주셨다.”

-감독과 해설가의 차이점은?

“선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다. 해설가는 냅다 지르기만 하면 되지만 감독은 결정하고 그 결과를 수습하고 책임져야 한다. 매번 선택해야 하는 일이 어렵다. 내 결정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렇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선택을 해보지 않았다. 사소한 정(情)을 떼고 과감성 등을 이른 시일 내에 갖춰야 할 것 같다. 오직 나만 보고 따라오는 많은 사람을 이끄는 리더의 어려움을 요즘 실감한다.”

-처음 선수들과 상견례를 했을 때 서로 주고받은 느낌은?

“선수들도 그동안 누가 감독으로 오는지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면담을 통해 선수들과 많은 얘기를 했다. 의외로 선수들이 얘기를 많이 했다. 원하는 것과 그동안 훈련에서 느낀 것 등을 편안하게 말했다. 선수들이 훈련은 많아도 좋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전 인터뷰에서 했던 ‘감독은 성(性)이 없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들렸다.

“우선 조혜정 선배께 감사드린다. 성공 실패를 떠나 이런 것을 경험하고 먼저 길을 열어준 것에 감사드린다. 나는 그 발걸음을 보고 다음 발을 어디에 내디딜지 선택하면 된다. 여성이라고 봐주고 배려하거나, 여성이니까 봐달라고 하거나, 여자라서 차별한다는 시각부터 먼저 벗어나야 한다. 여성의 부드러움은 약한 것으로 변질될 수 있어 경계한다. 부드러움은 필요하지만 절대로 약하게 보이지는 말자는 뜻에서 감독에는 성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여자 감독으로서 남자 감독이 못하는 부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 남자 감독들이 하는 파워배구를 여자 감독은 할 수 없다. 대신 배구는 기술과 섬세함 꼼꼼함도 중요하다. 꼼꼼한 지적 같은 부분에서 잘하려고 한다. 선수시절의 경험으로 보자면 몸이 편해지고 싶어 하는 본능은 여자가 더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지도자는 선수와 항상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은 선수와 내가 서로를 탐색하는 시기다. 앞으로 밀고 당기는 단계가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볼을 만지면서 그런 때가 올 것이다.”

-선수에게 감독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훈련 중에는 대충됐다고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 감독이다. 스포츠는 몸의 기억과 반응이다. 실업팀 이창호 감독을 비롯해 대표팀에서도 많은 감독을 모셨다. 지도자는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창호 감독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지금 내게 걱정이 많으실 것이다. 모든 것이 정비되면 찾아뵙고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 현역 때는 여자가 지도자가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떤 배구를 보여줄 것인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센터를 했고 세터도 했으니까 우선은 거기에 눈이 간다. 센터의 공격비중이 많아지는 배구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 배구는 9m 코트의 절반만을 사용한다. 외국인선수의 영향인데 가능하다면 코트를 다 이용하는 배구를 생각한다. 감독이 바뀐다고 배구가 확 바꾸지는 않는다. 기존에 하던 것을 더 잘하고 거기에 조금 더 새로운 것을 추가시킬 뿐이다. 선수에게 혼란을 주지 않고 실수를 줄여서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 감독이 와서 훈련 이외의 시간이 너무 피곤하다는 얘기는 듣지 않고 싶다. 훈련 때 베스트를 다하고 훈련만큼은 독하게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35년 이상을 배구와 살고 있는데 본인에게 배구란?

“초등학교 6학년 때 배구를 하셨던 체육선생님이 배구선수를 뽑았다. 시골에서 배구를 시작해 처음에는 토스도 언더 밖에 못했다. 기본기를 잘 가르쳐준 지도자 덕분에 더디게 갔지만 알고 보니 그것이 지름길이었다. 기본기로 지금껏 버텼다. 배구는 내게 운명이다. 무슨 일을 하건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있다. 이미 정해진 길이 아닐까. 단지 그 운명에 따라서 열심히 할 뿐이다. 언젠가 지도자를 마무리 할 때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내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다고 하고 느꼈으면 한다.”

-자신에게 가장 기억나는 경기 하나만 꼽으라면.

“백구의 대제전 원년(1984년 제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 때다. 현대와 결승전에서 먼저 2세트를 내주고 3-2로 역전승했다. 내가 팀(미도파)의 막내인데 MVP를 받았다. 앞으로 그보다 더 기억나는 경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용인|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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