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스윙이 더 무서운 ‘공갈포 타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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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당하지 않는 최정-김강민
과감한 삼진 많지만 홈런도 많아

인정하자. 야구팬이라면 마음속 한구석에 공갈포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공갈(恐喝)’을 “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며 을러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갈포 타자들은 삼진을 당할 때도 구심이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선언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과감한 헛스윙으로 ‘다음번엔 조심하라’는 뜻을 전하고 물러난다.

대표적인 타자가 SK 최정이다. SK 최정은 2013 시즌 삼진 109개를 기록했는데 이 중 90.8%(99개)가 헛스윙 삼진이었다. 반면 NC 이호준은 삼진이 109개였지만 헛스윙 삼진은 67.9%(74개)로 최정과 차이가 컸다. 최정(28개)이 이호준보다 홈런을 8개 더 칠 수 있던 데는 이런 ‘공갈포 정신’이 숨어 있던 것이다.

믿기 어렵다면 이건 어떤가. 지난 시즌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 헛스윙 삼진 비율이 가장 높은 선수는 SK 김강민(92.6%)이었다. SK 팬들이 김강민에게 ‘비스트(beast·짐승)’라는 별명을 붙여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거꾸로 헛스윙 삼진 비율이 가장 낮은 선수는 두산 김현수(63.4%)였다. 일본 애니매이션 ‘짱구는 못 말려’에 나오는 ‘맹구’가 별명인 선수답게 김현수가 상대 투수에게 공포를 느끼도록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김현수가 “상대 투수들이 고개도 안 젓고 던지더라”고 말한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김현수의 팀 동료 유희관은 이 점을 역이용할 줄 아는 투수다. ‘느리게, 더 느리게, 그보다 더 느리게’를 모토로 상대 타자가 자신에게 겁을 주려는 시도 자체를 아예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유희관은 지난해 전체 삼진 96개 중 55개(57.3%)만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규정 이닝 또는 타석을 채운 선수는 물론이고 삼진을 50개 이상 기록한 투수와 타자를 통틀어 가장 낮은 기록이다.

무릎 부상으로 616일 만에 1군 무대에 돌아온 넥센 마정길 역시 투수와 타자를 합쳐 유일한 기록을 세웠다. 복귀 첫해 그가 잡아낸 삼진은 31개, 헛스윙 삼진도 31개(100%)였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공갈포#SK 최정#NC 이호준#헛스윙 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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