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 D-8]“주사 자국도 도핑 위반… 슬며시 요구한 감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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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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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전문가 박원하 센터장, 런던 올림픽 주치의로 나서
자기 피 뽑은후 경기전 수혈… 혈액 도핑 수십년간 유행

1988년 서울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핑이 일어난 사례로 꼽힌다. 캐나다의 벤 존슨은 9초79의 당시 세계기록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하지만 소변 검사에서 근육강화제를 복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격 처리됐고 금메달은 칼 루이스(미국)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서울 올림픽에서 당시 소련이 가장 많은 도핑을 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국가대표 선수단 주치의인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장(54·사진)은 1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소련 선수단은 선수촌에 입촌하지 않고 인천 앞바다에 띄워 놓은 유람선을 숙소로 썼다. 치외법권 지대나 다름없는 그 안에서 대대적인 ‘혈액 도핑’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게 정설처럼 알려져 있다”고 했다.

대한체육회 의무위원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수년간 도핑분과위원장을 맡았던 대표적인 도핑 전문가다. 그는 2006년 도하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한국 대표 선수단의 주치의로 활동하면서 도핑 방지와 부상 치료 등에 힘썼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혈액 도핑’이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유행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 피를 뽑아 두었다가 경기 며칠 전 자기 자신에게 수혈을 하는 것이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양이 많아지면서 운동 능력이 월등히 좋아진다. 금지 성분이 포함된 약을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삿바늘 자국을 제외하면 발각될 위험도 없다.

이에 따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혈액 도핑’을 잡아내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해왔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주삿바늘 없음(No needle)’ 정책에 따라 각 팀에서는 주사제를 쓸 수 없다. 모든 주사제를 대회조직위가 보관한다. 이전 대회까지는 각 팀이 주사제를 갖고 있다가 필요에 따라 주사를 놓은 뒤 이후 소명을 하면 됐다.

박 교수는 “2000년대에 동행한 한 종합대회에서 어떤 감독으로부터 ‘선수들에게 영양제를 주사로 놔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털어놓았다.

영양제에는 금지 약물 성분은 없지만 바늘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도핑 위반이었기에 박 교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 감독은 “어차피 우리 둘만 비밀로 하면 되는 일 아니냐”며 끈질기게 졸랐다고 한다.

대회가 끝나고 귀국한 직후 박 교수는 경찰이 대표팀의 도핑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핑을 끝까지 막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박 교수는 “도핑은 어떤 식으로든 밝혀지고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선수들에게도 틈나는 대로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IOC가 경기력 강화 물질을 금지하기 시작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도핑이 적발된 사례(승마용 말도 포함)는 모두 99건에 이른다.

박 교수는 “선수들이 복용하는 보약이나 영양제 등을 모두 수거해 일반인들에게 먹여 본 뒤 안정성이 입증된 것만 선수들에게 돌려줬다. 다만 신고되지 않은 영양제를 먹는 선수가 나올까 봐 걱정이다. 도핑 테스트에 걸려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까지 망신당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런던 올림픽#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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