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 D-8/단독]베트남 첫 金, 희망차기… 가난과 좌절, 돌려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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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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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태권 남녀’ 린-쩌우, 국내서 올림픽 대비 맹훈련
국내업체가 모든 비용 지원… 황경선-이대훈이 가장 큰 벽

5월부터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훈련하고 있는 베트남의 ‘국민 태권남매’ 레 후인 쩌우(왼쪽)와 쭈 호엉 지에우 린이 힘찬 발차기를 하고 있다. 쩌우와 린은 종주국 한국에서 경희대 태권도팀과 함께 훈련하며 런던 올림픽에서의 베트남 스포츠 역사상 첫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용인=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5월부터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훈련하고 있는 베트남의 ‘국민 태권남매’ 레 후인 쩌우(왼쪽)와 쭈 호엉 지에우 린이 힘찬 발차기를 하고 있다. 쩌우와 린은 종주국 한국에서 경희대 태권도팀과 함께 훈련하며 런던 올림픽에서의 베트남 스포츠 역사상 첫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용인=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 여자의 이야기

어릴 적 어머니는 베트남 하노이의 쌔옴(오토바이 택시) 운전사였다. 아버지는 변변한 직장이 없었다. 작은 방 하나였지만 가족은 화목했다. 그땐 ‘가난’이 뭔지도 몰랐다. 유일한 불만은 큰 키였다. 열 살 때 이미 동급생 남자아이보다 컸다. ‘운동선수가 돼라’는 말은 죽기보다 싫었다. 베트남 ‘태권도 여신’ 쭈 호엉 지에우 린(18·175cm) 얘기다.

태권도와의 만남은 우연에 가까웠다. 12세 때 길을 걷다 건물 1층 도장에서 발차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베트남 전통무술 ‘보비남’보다 화려한 발차기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엄마를 졸라 다음 날부터 곧장 도장에 나갔다. 그 운동이 ‘태권도’라는 사실도 모른 채.

태권도는 린의 운명을 바꿔 놨다. 입문 1년 만인 2007년 하노이 시 체육국에서 선수로 뛰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다. 300달러(약 34만 원)의 월급은 가족 생계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전국대회만 나가면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체격 조건은 좋았지만 체계적인 체력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린은 주니어 국가대표였던 2009년 한국인 최초로 베트남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김재식 감독(현 잠실고 감독)을 만나며 일취월장했다. 김 감독은 정신력 강화를 위해 태권도 예절부터 꼼꼼히 가르쳤다. 린에게 한국식 체력 훈련은 매일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고됐다. 하지만 체력에 자신이 붙자 경기 운영 능력도 배가됐다. 린은 결국 베트남 1인자에 올랐다. 1년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김 감독이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린은 눈물을 쏟으며 약속했다. “올림픽에서 만나요.”

#한 남자의 이야기

어릴 적 홀어머니는 담배 장사로 생계를 꾸렸다. 고향인 베트남 호찌민 시의 한 외곽 마을에서는 마약과 도박이 판을 쳤다. 소년의 유일한 희망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며 가난을 탈출한 삼촌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 소년은 런던 올림픽에서 베트남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레 후인 쩌우(25·179cm)였다.

태권도는 쩌우 가족 모두의 꿈이었다. 호찌민 시 체육국 선수로 발탁돼 받기 시작한 월급 300달러(약 34만 원)는 가족의 젖줄이었다. 18세 나이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자 살림살이는 조금 더 나아졌다. 새집도 장만하고 누나의 결혼 비용도 전액 부담했다.

쩌우는 베트남 스포츠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메달을 목에 건 순간 눈물이 났다.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에서 딴 메달이라 더 감동적이었다.”

#베트남 ‘태권 남매’의 이야기

린과 쩌우는 한국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CJ그룹이 ‘글로벌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5월부터 3개월 동안 훈련비, 체류비, 유럽 전지훈련비 등 약 3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린은 “한국에서 최고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CJ는 금메달 11만 달러(약 1억2000만 원), 은메달 3만 달러(약 3400만 원), 동메달 1만 달러(약 1100만 원)의 포상금까지 걸었다. 베트남의 태권도 남매는 19일부터 이탈리아 현지 적응 훈련을 거쳐 다음 달 7일 런던 현지에 입성한다.

린과 쩌우의 가장 큰 산은 종주국 한국의 황경선(67kg이하급)과 이대훈(58kg이하급)이다. 린과 쩌우는 5월 아시아선수권에서 나란히 이들에게 패했다. 쩌우는 “한국 선수만 만나면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강한 스파링 상대와 훈련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린은 아직 김재식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 “큰 무대를 앞둔 제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며 김 감독이 만남을 한사코 사양했기 때문이다. 린은 사부의 깊은 배려에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생각이다. “김재식 감독님 너무 보고 싶어요.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고 오면 훈련 끝나고 종종 함께 먹던 한국 라면 끓여 주실 거죠?”

용인=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태권 남녀#런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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