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BA!… 신인 올스타전은 ‘린 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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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자회견 특별대우도

본보, 국내언론 유일 초청받아

“(제러미) 린이 당신들을 보고 있다.”

25일 미국프로농구(NBA) ‘라이징 스타스 챌린지’ 경기가 열린 미국 올랜도의 암웨이센터. 경기 중 작전시간 때 팬을 위한 커플 키스 이벤트가 진행됐다. 대형 전광판에 얼굴이 잡히는 커플은 관중의 함성과 박수 속에 키스를 했다. 그런데 한 커플이 망설이며 머뭇거렸고 보다 못한 진행자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던진 한마디. “린이 보고 있다.” 제러미 린(24·191cm)은 이날 NBA 1, 2년차 신인급 선수들의 올스타전인 라이징 스타스 챌린지에 출전한 뉴욕 닉스의 대만계 미국인 포인트가드다.

린의 이름을 팔면 없던 마음도 동하게 할 수 있다고 진행자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요즘 같은 분위기면 그럴 수 있다. 동아일보가 국내 언론사 중 유일하게 NBA의 초청을 받아 취재한 2012 NBA 올스타 이벤트(24∼27일)는 ‘린 쇼(Lin Show)’였다.

린은 특별했다. NBA 사무국은 린이 라이징 스타스 챌린지에 출전한 2년차임에도 그를 위한 기자회견을 25일 따로 마련했다. 이번 올스타 이벤트에서 유일하게 마련된 단독 기자회견이었다. NBA를 주름잡는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도 받지 못한 특별대우다. 브라이언트와 르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 드와이트 하워드(올랜도 매직) 등 내로라하는 올스타 선수들이 도떼기시장 같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선 상태에서 인터뷰한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NBA 사무국은 린이 대만계인 점을 고려해 26일 대만과 중국, 홍콩 언론을 위한 기자회견을 또 열었다. 최근 폭발적으로 높아진 린의 상품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휴스턴 로키츠에서 뛰던 중국의 장신 센터 야오밍이 지난해 은퇴한 뒤 아시아시장 공략 콘텐츠를 잃었던 NBA로선 린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려는 분위기다. NBA 사무국은 올스타전 이벤트 기간에 ‘중국의 밤’ 행사를 여는 등 중국시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NBA 사무국은 우리나라 파트너 회사에도 린의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해 달라고 요청했다.

믹스트존의 르브론 제임스 미국프로농구 최고의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기자들에 둘러싸인 선수)가 26일(한국 시간) 올스타전 훈련을 앞두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 드와이트 하워드(올랜도 매직) 등도 이곳에서 인터뷰를 했다. 올랜도=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믹스트존의 르브론 제임스 미국프로농구 최고의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기자들에 둘러싸인 선수)가 26일(한국 시간) 올스타전 훈련을 앞두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 드와이트 하워드(올랜도 매직) 등도 이곳에서 인터뷰를 했다. 올랜도=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대만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다. 대만의 한 방송사 기자가 “우리 시청자에게 인사말을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린에게 했다. 대만에서도 불고 있는 린 열풍에 올라타 자사 홍보를 하려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사회자는 곧바로 “안 된다. 다음 질문”이라고 제지하며 다른 기자에게 질문 순서를 넘겼다. 대만에서 린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린은 당초 라이징 스타에 뽑히지 못했다. 라이징 스타 후보자 명단은 ‘린새니티(Linsanity)’가 몰아치기 전인 1월 말에 정해졌다. 린새니티는 린(Lin)과 열광이란 뜻의 인새니티(insanity)를 묶어 만든 신조어다. 2월 들어 선발 출전의 기회를 잡은 린이 6경기 연속 20득점 이상을 넣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갈 때도 데이비드 스턴 NBA 총재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린이 특별 초대되는 일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스턴 총재는 린에 미친 팬들의 성화에 버티지 못했다. 팬들 사이에서 “지금은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가 아니라 LINBA(Lin's Basketball Association·린의 농구협회)다”는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린은 차분했다.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됐는데도 스물네 살이란 나이답지 않게 침착했고 유머 감각도 넘쳤다. 그는 “뜨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 얘기에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아시아계라서 차별받고 과소평가됐던 것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얘기했다. 린은 “어느 정도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차별은 있었다. 아시아계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시아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기자회견 중 “대학 시절 경기 중에도 당신을 멈추게 하는 트래시 토킹(trash talking·상대 기를 꺾기 위해 하는 모욕적인 말)이 있었다던데…”라는 질문이 나왔다. 린은 웃으면서 “누가 그래요?”라며 되물었다. 그는 “그런 말 때문에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경기 중 계속 일어날 것이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린은 스탠퍼드, 듀크 같은 농구 잘하는 명문대학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버드대에 입학해 4년 동안 아이비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했지만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또 고배를 들었다. 서머리그에서 뛰던 린은 2010년 NBA 입성에 성공하지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휴스턴 로키츠를 거치는 동안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뉴욕 닉스로 팀을 옮긴 이번 시즌 초반만 해도 평균 출전시간이 5분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기회가 찾아왔고 린새니티 현상을 일으킨 그는 ‘만리장성’이라 불리던 야오밍보다 더 높이 우뚝 설 기세다.

올랜도=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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