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길을 묻다]<3>코트 포청천 김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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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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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외교서 밀렸다… 日 압도 못하면 올림픽 못 가”

“제가 감히 원로라고 할 수 있나요.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계신데….”

김건태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57·사진)은 본 시리즈의 세 번째 인물이 되어 달라는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나이도 많지 않거니와 심판의 길만 걸어와 시야가 한정돼 있다고도 했다. 그는 1998년부터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으로 활동하다 2010년 말 정년퇴임했다. FIVB 심판은 세계 약 950명의 국제심판 가운데 12명 내외에게만 허락되는 ‘심판 중 심판’이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주심은 그들만 맡을 수 있다. 그런 경력이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 한국 배구를 얘기할 수 있다는 설득에 그는 비로소 취재에 응했다. 국내 심판 정년(58세)을 앞두고 여전히 코트에서 휘슬을 불고 있는 그를 24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만났다.

○ 심판 권위 바로 세워야


김 위원은 이날 대한항공-삼성화재 경기의 주심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과 한바탕 언쟁을 벌였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TV 중계 화면에 잡혔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심판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외롭고 힘든 직업이다. 내 편은 없고 비난만 있다. 신 감독이 끝난 상황을 놓고 항의하기에 가만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 감독은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명장이지만 이번 행동은 아쉽다. 방송 중계에도 문제가 있다. 초고속 카메라를 사용해야만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유럽 리그의 경우 심판 판정에 관련된 상황은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심판을 믿어야 한다. 심판 역시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한다.”

○ 배구 외교력 강화 절실

한국 배구는 남녀 모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실력 차이도 있지만 배구 외교에서 밀렸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아시아 정상권이던 일본 남자 배구가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잇달아 못 나갔다. 여자 배구도 시드니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한국에 졌기 때문이다. 일본 배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후 일본은 막강한 자금과 인맥을 활용해 FIVB를 장악했다. 그 결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최종 예선은 일본에서만 치르게 됐다. 친일본 성향 심판과 감독관들이 경기에 나선다. 일본을 압도하는 전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는 구조다. 배구 외교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FIVB 주관 대회인 세계선수권, 청소년선수권 등을 유치하는 게 첩경이다. 장기 계획을 세우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 V리그 발전을 위한 제언

2005년 출범한 프로배구는 8시즌째를 치르고 있다. 한쪽에서는 ‘궤도에 올랐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우리 V리그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리그’라고 단언했다.

“배구 좀 안다는 사람들은 이탈리아, 러시아 리그를 좋다고 한다. 물론 경기력과 연봉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시스템, 운영, 이벤트는 우리가 앞선다. 유럽 심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다만 현재의 경기 일정은 문제가 있다. 한 장소에서 남녀 경기를 같이 치르면 여자 경기는 관심을 받지 못한다. 월요일 등 경기가 없는 날에 여자 경기를 따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여자 농구처럼 별도의 리그를 만들지는 그 다음에 결정할 문제다.”

인천=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김건태 심판위원은?

리라공고 2학년 때 배구 선수가 됐다. 1973년 고교 졸업 후 충주비료에서 뛰며 국가대표 센터(190cm)로 활약했다. 1974년 오른팔 대동맥이 막히는 희귀병으로 수술을 받았고 1978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 후 일반 회사에 다니다 1985년 심판이 됐다. 1990년 국제심판 자격증을 땄고 1998∼2010년 국내 유일의 FIVB 심판으로 활동했다. 3차례의 올림픽과 8차례의 세계선수권에 나갔고 주요 국제대회 결승도 10회 이상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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