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신동민 강기석… 산사나이들의 도전 잊지않겠습니다, 어제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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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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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박영석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합동 영결식에서 강 대원의 누나와 조카가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3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박영석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합동 영결식에서 강 대원의 누나와 조카가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위대한 도전과 탐험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합동 영결식이 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열렸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은 조사를 통해 “이들이 남긴 뜨거운 열정의 메아리는 역사로 기억될 것”이라며 실종자들을 기렸다. 박 대장의 모교인 동국대 김희옥 총장은 “박 대장이 추구한 높이는 물리적 높이가 아니라 인류정신의 높이였다”며 “대자연과 하나 되는 경지, 백전불굴의 정신이 박영석 정신이었다”고 추도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인촌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박 대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만화가 허영만 씨와 엄홍길 씨를 비롯한 많은 산악인이 참석했다. “산을 제일로 사랑했던 그 악우(岳友)여. 어이해 눈보라 속에 사라졌나 그 친구, 그 악우여….” 산악인들이 ‘악우가’를 부르는 동안 식장엔 흐느낌이 가득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본보 기자들이 지켜본 박영석 ▼


박영석 대장(사진)의 도전에는 동아일보도 함께했다. 박 대장의 2005년 북극 원정과 안나푸르나 트레킹, 2006년 에베레스트 횡단, 2007년 베링해협 횡단 때는 전창 기자가, 2008년 중국 쓰촨 성 미답봉 원정에는 김성규 기자가 한 달가량 동행했다. 2009년 ‘코리안 루트’를 냈던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 때는 황인찬 기자가 두 달 넘게 원정대와 함께했다. 동아일보는 2004년부터 박영석 대장이 대학생들과 함께했던 국토 순례 행사 ‘대한민국 희망원정대’도 후원했다.

박 대장의 원정대는 상명하복의 질서가 뚜렷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엄한 겉모습 뒤로 일일이 대원들을 챙기는 ‘따뜻한 맏형’이었다.

김 기자는 “내가 3900m 높이의 베이스캠프에서 고산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했을 때 취사 담당이었던 신동민 대원에게 ‘식욕 좀 돋우게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라’고 말하는 등 마음이 따뜻한 대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기자는 “지친 대원들에게 먹이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30만 원짜리 6년산 홍삼을 배낭에서 주섬주섬 꺼내 박 대장이 손수 달이곤 했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김 기자는 “원정 지역에서 무언가를 끓이는 냄비는 모두 뚜껑을 열어보고,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라면 꼭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등 호기심이 왕성했다”고 기억했다.

황 기자는 “처음에는 거만하고 무례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볼수록 잔정이 많았다”고 했다. 동행 취재가 확정되자 박 대장은 “대원이니까 이제 말 놔도 되지”라고 말해 기자를 잠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황 기자는 한 달 반 동안 해발 5364m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단것이 너무 먹고 싶었다. 밤에 몰래 비품 텐트에서 500mL 콜라 한 병을 꺼내 먹었다가 이튿날 박 대장에게 호되게 혼났다. 대원의 몫을 기자가 축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며칠 뒤 박 대장은 콜라와 사이다를 비롯한 탄산음료를 한 무더기 구입해 줬다.

희망원정대를 동행 취재했던 한우신 기자는 “박 대장은 대학생들이 ‘힘들다’ ‘아프다’고 말하면 감싸 주기보다는 더 호되게 꾸짖는다. 학생들은 원정 중에 박 대장의 독선적 태도에 자주 불만을 토로했지만 끝난 다음에는 박 대장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따랐다”고 했다. 한 기자는 원정이 끝난 뒤 박 대장이 대학생들에게 남긴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여러분, 많이 비웠습니까. 이제 그 속에 꿈을 채워 넣으세요.”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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