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오픈 황색 돌풍의 의미와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5일 1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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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꿈꾸던 승리를 품에 안은 그는 붉은 클레이코트에 드러누웠다. 하늘을 나는 듯한 환희가 얼굴에 번졌다. 테니스 변방이라는 아시아에서 사상 첫 메이저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중국의 리나(29)였다. 세계 7위 리나는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지난해 우승자인 세계 5위 프란체스카 스키아보네(31·이탈리아)를 2-0(6-4, 7-6)으로 꺾었다.

은퇴한 중국계 미국인 마이클 창(39)이 1989년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한 적이 있지만 아시아 국가 출신이 메이저 타이틀을 안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승 상금은 120만 유로(약 18억8000만 원).

서른을 바라보는 리나가 뒤늦게 성공한 비결에는 특유의 반골 기질이 작용했다. 리나는 구소련의 영향을 받은 강압적인 훈련 방식에 반감을 가졌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만 쳐야 했다. 제대로 놀 시간도 없었다." 1999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스포츠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2002년 대표팀을 떠났다.

화중과학기술대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그는 2004년 복귀 후 광저우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 투어에서 중국 선수 최초로 우승했다. 2006년 개인 코치였던 장산과 결혼 후 2008년 자국 테니스협회의 간섭에서 벗어나 스스로 팀을 꾸려 투어 생활에 나섰다. 이른바 '플라이 얼론(Fly alone)' 정책을 이끌어냈다. 중국테니스협회는 상금액의 65%에 이르던 세금을 8~12%로 경감해 줬다. 리나는 올해 호주오픈 준우승 후 부진에 빠지자 남편에게 코치 역할을 관두게 하고 덴마크인 새 코치를 영입해 재도약했다.

가슴에 남편을 향한 애정 표시로 장미 문신을 하고 형형색색의 머리 염색에, 공개석상에서 남편에게 당당히 큰소리는 치는 그의 모습에 중국 여성들은 대리만족을 느끼며 열광했다. 6500만 명의 중국인들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결승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리나의 쾌거는 중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테니스 발전에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골프에서는 박세리 최경주 양용은이 그랬다. 1998년 메이저대회인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세리와 2009년 PGA챔피언십 우승자 양용은, 올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선 최경주는 아시아의 어린 골퍼에게 희망의 전도사가 됐다.

중국에서 테니스는 상류층 스포츠라는 인식 속에 세계 최고 수준인 배드민턴, 탁구 등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리나 역시 배드민턴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셔틀콕을 치다 코치의 권유로 9살 때 테니스로 전향했다. 중국에는 3만 개의 테니스 코트가 있으며 테니스 인구는 1400만 명 정도. 3억 명에 이르는 탁구에 비해 아직은 신흥 스포츠로 불린다. 그동안 여자 복식에서 2차례 메이저 대회 우승자를 배출했지만 단식은 체격과 파워의 핸디캡이 커 넘지 못할 벽으로 여겨졌다.

역대 아시아 최고 타이인 세계 4위까지 상승한 리나는 "개혁 없이 이런 영광은 없었다. 중국 테니스는 더욱 커질 것이다. 2, 3년 더 뛰다 아기도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 단식에서 로저 페데러(스위스)는 올 시즌 41전 전승을 기록 중이던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3-1로 꺾고 결승에 올라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우승을 다투게 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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