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추락과 임태훈의 빈자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30일 17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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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더그아웃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얼굴엔 미소까지 엿보였다. 하지만 속은 타들어갔다. "야구를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프로야구 두산 김경문 감독 얘기다.

기자는 김 감독을 5년째 지켜봤다. 그는 명장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사상 최초의 전승 금메달을 이끌었다. 믿음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2005년부터 두산 사령탑을 맡아 5번이나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준우승만 3번한 그의 마지막 소망은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두산은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김현수-김동주-최준석으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은 탄탄했다. 이종욱 오재원 정수빈 등 빠른 발도 여전했다. 4월까지만 해도 선두 SK를 바짝 뒤쫓는 2위였다.

그러나 31일 현재 두산은 6위(19승 2무 24패)로 내려앉았다. 5월 성적만으로는 최하위(6승 1무 17패)다. 최근 10경기에서 2승(1무 7패)밖에 건지지 못했다. 투타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뒷문을 책임지던 임태훈의 빈 자리가 유난히 커 보인다. 임태훈은 4월에 1승 7세이브를 거두며 잘 던졌다. 하지만 5월에는 5경기에서 1패만 기록했다. 그리고 불미스러운 사건의 여파로 24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아나운서와의 열애설이 불거져서다.

김 감독은 평소 임태훈을 아꼈다. 프로 입단 첫 해인 2007년 중간계투 조에 투입했다. 임태훈은 7승 3패 20홀드에 평균자책 2.40으로 신인왕을 받았다. 그런 애제자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자 감독은 "내 잘못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두산의 성적도 덩달아 흔들렸다. 선수들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졌다. 끈질긴 뚝심의 팀 컬러도 흐려졌다.

임태훈은 23세의 젊은 투수다.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은 선수다. 그가 언제 다시 마운드에 오를지는 알 수 없다. 두산 관계자는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자는 고인과 야구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나는 두산 팬"이라고 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임태훈이 아픔을 딛고 더 씩씩하게 공을 던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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