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호기심 천국] 왼손잡이 포수는 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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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0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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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 송구·홈 블로킹…치명적 핸디캡

LG 포수 조인성. 스포츠동아DB.
LG 포수 조인성. 스포츠동아DB.
우타자 많아 2루 송구 방해 요소 작용
홈 블로킹 때도 태그 반경 더 넓어 불리
왼손잡이 글러브 등 장비 희귀성 한몫
어깨좋은 좌완, 포수보단 투수 딜레마
한화 2군 송진우 코치의 차남 우현(온양중)군은 초등학교 시절, 왼손포수로도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 이후에는 투수에만 전념하고 있다. 비단 우현 군뿐만이 아니다. 왼손잡이가 유리한 야구지만, 포수만큼은 예외다. 한국프로야구사상 왼손포수는 전무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역사상 약 30명뿐인데, 대부분은 초창기에 활약했던 선수들이다. 1902년 이후 왼손포수가 등장한 것은 단 11경기 뿐. 가장 최근에는 1989년 베니 디스테파노가 피츠버그 소속으로 3경기의 안방을 지켰다. 왼손포수 중 다수는 원래 포지션이 있는 상태에서,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대체요원으로 나선 것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000경기 이상 뛴(1884∼1900년) 왼손포수는 잭 클레멘츠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왜 왼손포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리진 것일까.

○송구의 문제1. 우타자가 다수라 2루 송구가 불리하다?

LG 조인성은 2루 송구의 문제를 가장 먼저 짚었다. “아무래도 우타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오른손포수는 타석에 좌타자가 있을 때, 2루 송구에 방해를 받는다. 왼손포수는 그 반대다. 스포츠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2010시즌 우타자가 타석에 있을 때 2루 도루성공률이 0.712(580회 성공/815회 시도)였던데 반해, 좌타자가 타석에 있을 때 2루 도루성공률은 0.721(424회 성공/588회 시도)로 높아졌다.“송구하는 방향에 타자가 서있으면, 포수의 송구동작이 지연된다”는 얘기가 통계를 통해서도 입증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 편차는 약1푼으로,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포수출신인 SK 이만수 2군 감독은 “포수(우완)들은 어릴 때부터 좌타자를 세워놓고 송구훈련을 많이 하면서 적응해 간다”고 설명했다. 왼손포수는 2루 뿐 아니라, 3루 송구 시에도 오른손포수에 비해 불리하다. 3루에 던지려면 오른손포수가 1루에 던지듯, 몸을 한번 틀어야 하기 때문이다.

○송구의 문제2. 송구가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방향 때문에 불리하다?

다음과 같은 의견도 있다. “우완의 송구는 자신이 공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좌완은 왼쪽으로 휘어지는 경향이 있다. 오른손포수의 송구는 주자를 태그하기 좋은 방향(2루수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가지만, 왼손포수는 그 반대(유격수쪽)다.”

양상문 스포츠동아해설위원은 야수의 송구가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공에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회전을 주면, 당연히 완벽한 직선형태로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팔의 스윙궤적상, 우완은 1시에서 7시 방향으로 회전을 주게 된다.(좌완은 11시에서 5시) 따라서 우완의 경우 공이 오른쪽으로 약간 휜다. 던지는 거리가 멀수록 이 각은 더 커진다. 투수보다는 내야수가, 내야수보다는 외야수의 송구가 더 많이 휜다.”

멀티내야수 출신인 넥센 홍원기 코치는 “실제로 포수의 2루 송구를 받아보면, 훅 성(유격수방향)은 대개 원바운드로 찍혀서 오는 경우다. 슬라이스 성(2루수쪽)으로 오는 송구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일반화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SK 이만수 2군 감독 역시 “2루 송구가 커터성이냐 싱커성이냐는 팔의 스윙뿐 아니라 순간적인 포수의 그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송구의 자연스러운 궤적이) 왼손포수가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홈 블로킹의 문제와 왼손포수미트의 희귀성


“홈 블로킹을 할 때 오른손잡이가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오른손포수는 미트를 왼손, 즉 주자가 홈 플레이트를 향해 달려오는 방향에 끼우기 때문이다. 반면 포수미트를 오른손에 착용하는 왼손포수는 블로킹·태그를 할 때 동작의 반경이 더 넓어진다.

장비의 희귀성 문제도 있다. 김동수 코치 같은 명포수도 처음 안방에 앉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어릴 때 마침 우리 집에 형이랑 캐치볼 하던 포수 미트가 있었다.” 하지만 왼손잡이는 이런 기회를 잡기 힘들다. 왼손포수미트는 기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글러브제조업체 ‘브라더스포츠’ 김정한 공장장은 “왼손포수미트는 전량주문생산만 한다. 미국의 W사도 왼손미트는 1000개 중 3개 정도만 만든다”고 했다. 지난시즌 넥센에서 뛰었던 좌완 용병 번사이드도 아들과 캐치볼을 하기 위해, 포수미트를 따로 주문해야 했다.

○강견의 왼손잡이에게 누가 포수를 시키나?

하지만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왼손포수는 존재했다. 클레멘츠는 왼손포수였지만, 송구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저명한 야구통계학자인 빌 제임스는 1890년 ‘필라델피아 레저’에 실린 기사를 인용한 적이 있다. “워낙 클레멘츠의 송구능력이 좋아 주자들은 타자가 치거나 야수가 실책을 하지 않는 이상, 계속 베이스에 묶여 있어야 했다.” 제임스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랭킹 58위에 클레멘츠의 이름을 올렸다. 왼손잡이라도 풋워크가 뛰어나면 ‘송구의 문제1’을 최소화할 수 있고, 제구가 좋으면 ‘송구의 문제2’를 빗겨갈 수 있다.

롯데 최기문 배터리코치는 더 근본적인 부분을 짚었다. “그럴 바에는 투수를 한다.” 포수포지션은 기본적으로 어깨가 좋은 선수의 차지다. 한화 송진우 코치의 차남이 초등학교 시절 포수가 된 이유도 간단했다. “홈에서 2루까지 던지는 놈이 우리 아들 밖에 없었대요. 그래서 왼손잡이인데 3루수도 봤어요.” 이렇게 어깨가 좋은 좌완에게 과연 지도자들이 계속 마스크를 씌울까. 지난시즌 두산에서 뛰었던 좌완 용병 왈론드 역시 학창시절 포수를 봤지만, 결국 투수로 본업을 삼았다.

메어저리그 전문가들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왼손포수가 없는 것은, 강견의 왼손야수가 드문 현상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역대 한국프로야구에서도 소문난 어깨의 야수들은 오른손 잡이가 다수였다.

“지옥에 가서라도 잡아오라”는 좌완강속구투수의 무게감이야말로, 왼손포수의 탄생을 짓누르는 큰 요인 중 하나다.

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an11)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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