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며 공부하는 야구!’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야구협회가 내건 고교야구 주말리그 슬로건이다. 주중엔 공부하고 주말에 야구하자는 취지다. 백번 맞는 말이다. 운동선수에게도 ‘국영수’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엔 차이가 있다. 운동선수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평일엔 낮에 수업을 듣고 늦은 밤까지 훈련을 해야 한다. 주말엔 경기를 하느라 쉴 틈이 없다. 감독들은 이기기 위해선 매주 에이스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대학 못가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 운동과 공부, 모두 겉도는 선수들
“허리가 아파요. 수업 다 듣고 훈련해야 하니….” 고교 2년생 K 군은 요즘 하루가 지옥 같다고 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학교에 간다. 책상에 앉아 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수업을 빠지는 건 금지다. 교육부에서 수시로 감사를 나오기 때문이다.
방과 후 야구부로 향한다. 늦은 밤까지 타격과 수비훈련이 이어진다. K 군은 “운동선수를 위한 맞춤반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러다 야구도, 공부도 낙제생이 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학부모들 회비 납부 거부도
“주말리그는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회복하는 게 아니라 인권 침해를 하고 있다.” A고 야구부 감독은 주말리그가 부익부 빈익빈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말에만 경기를 하다 보니 에이스만 등판하고 후보선수들은 나올 기회가 없어진다. 실제로 경남고 한현희는 주말리그 개막전부터 매 경기 혼자 나가 3연속 완봉승을 거뒀다. 이종운 감독은 “안타깝지만 왕중왕전에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다른 학교도 주전선수 쏠림 현상은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대한야구협회는 최근 교육부에 각 대학이 특기자 전형 때 고교선수들의 개인성적을 반영하도록 권고해 달라고 건의했다. 한 후보 선수의 학부모는 “똑같이 회비 내고 야구 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더그아웃에 앉아만 있느냐”며 회비 납부를 거부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정부
2009년 주말리그를 가장 먼저 도입한 축구는 초중고교와 대학 총 700여 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2010년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의뢰해 초중고교 축구리그제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지도자는 38.1%, 학부모는 47%, 선수는 60.5%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불만족은 15.7∼21.8%였다. 하지만 한 축구 관계자는 “주말리그와 함께 기존의 전국대회까지 참가해야 해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선수가 많다”고 전했다.
대학만 주말리그를 하고 있는 농구와 배구는 평일 오후나 주말에 경기를 열고 있다. 그러나 경기 시작 3, 4시간 전부터 몸을 풀어야 해 경기 당일은 수업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고교 아이스하키의 경우 팀은 8개뿐이다. 이 중 절반인 상위 4개 팀이 왕중왕전을 치르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축구의 경우 2009년 초중고교 주말리그를 시작하기 전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이제 정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 정상익 교육연구사는 “주말리그는 선진국처럼 운동선수에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경기를 많이 하느냐보다 집중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전국대회를 방학 때만 치르고 수준별 리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종목 편차 무시한 일방통행
그러나 축구와 야구는 규모부터 차이가 있다. 축구는 초중고교팀이 630여 개나 된다. 고교야구는 53개팀뿐이다. 왕중왕전에 나가지 못하는 20여 개팀은 허구한 날 연습만 할 뿐이다. 일본이 4000여 개 팀이 수많은 지역예선을 치러 왕중왕전 격인 고시엔대회를 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상반기 왕중왕전이 끝난 뒤 야구협회와 주말리그 운영 방법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인식 주말야구 추진위원장(한국야구위원회 기술규칙위원장)은 “주말리그가 초창기여서 시행착오가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시작하는 건 이미 늦었다. 주말리그는 초·중학교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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