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며 공부하는 고교야구 주말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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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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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학교에선? 주말 경기장선?

《‘즐기며 공부하는 야구!’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야구협회가 내건 고교야구 주말리그 슬로건이다. 주중엔 공부하고 주말에 야구하자는 취지다. 백번 맞는 말이다. 운동선수에게도 ‘국영수’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엔 차이가 있다. 운동선수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평일엔 낮에 수업을 듣고 늦은 밤까지 훈련을 해야 한다. 주말엔 경기를 하느라 쉴 틈이 없다. 감독들은 이기기 위해선 매주 에이스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대학 못가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원하듯 고교 야구선수들은 프로 진출을 꿈꾼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도 프로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중학교 때까지 제대로 수업을 받지 않은 그들에게 학업과 운동의 병행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아일보DB
일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원하듯 고교 야구선수들은 프로 진출을 꿈꾼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도 프로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중학교 때까지 제대로 수업을 받지 않은 그들에게 학업과 운동의 병행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아일보DB
○ 운동과 공부, 모두 겉도는 선수들

“허리가 아파요. 수업 다 듣고 훈련해야 하니….” 고교 2년생 K 군은 요즘 하루가 지옥 같다고 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학교에 간다. 책상에 앉아 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수업을 빠지는 건 금지다. 교육부에서 수시로 감사를 나오기 때문이다.

방과 후 야구부로 향한다. 늦은 밤까지 타격과 수비훈련이 이어진다. K 군은 “운동선수를 위한 맞춤반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러다 야구도, 공부도 낙제생이 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학부모들 회비 납부 거부도

“주말리그는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회복하는 게 아니라 인권 침해를 하고 있다.” A고 야구부 감독은 주말리그가 부익부 빈익빈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말에만 경기를 하다 보니 에이스만 등판하고 후보선수들은 나올 기회가 없어진다. 실제로 경남고 한현희는 주말리그 개막전부터 매 경기 혼자 나가 3연속 완봉승을 거뒀다. 이종운 감독은 “안타깝지만 왕중왕전에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다른 학교도 주전선수 쏠림 현상은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대한야구협회는 최근 교육부에 각 대학이 특기자 전형 때 고교선수들의 개인성적을 반영하도록 권고해 달라고 건의했다. 한 후보 선수의 학부모는 “똑같이 회비 내고 야구 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더그아웃에 앉아만 있느냐”며 회비 납부를 거부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정부


2009년 주말리그를 가장 먼저 도입한 축구는 초중고교와 대학 총 700여 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2010년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의뢰해 초중고교 축구리그제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지도자는 38.1%, 학부모는 47%, 선수는 60.5%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불만족은 15.7∼21.8%였다. 하지만 한 축구 관계자는 “주말리그와 함께 기존의 전국대회까지 참가해야 해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선수가 많다”고 전했다.

대학만 주말리그를 하고 있는 농구와 배구는 평일 오후나 주말에 경기를 열고 있다. 그러나 경기 시작 3, 4시간 전부터 몸을 풀어야 해 경기 당일은 수업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고교 아이스하키의 경우 팀은 8개뿐이다. 이 중 절반인 상위 4개 팀이 왕중왕전을 치르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축구의 경우 2009년 초중고교 주말리그를 시작하기 전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이제 정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 정상익 교육연구사는 “주말리그는 선진국처럼 운동선수에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경기를 많이 하느냐보다 집중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전국대회를 방학 때만 치르고 수준별 리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종목 편차 무시한 일방통행

그러나 축구와 야구는 규모부터 차이가 있다. 축구는 초중고교팀이 630여 개나 된다. 고교야구는 53개팀뿐이다. 왕중왕전에 나가지 못하는 20여 개팀은 허구한 날 연습만 할 뿐이다. 일본이 4000여 개 팀이 수많은 지역예선을 치러 왕중왕전 격인 고시엔대회를 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상반기 왕중왕전이 끝난 뒤 야구협회와 주말리그 운영 방법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인식 주말야구 추진위원장(한국야구위원회 기술규칙위원장)은 “주말리그가 초창기여서 시행착오가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시작하는 건 이미 늦었다. 주말리그는 초·중학교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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