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순 형 깜짝투혼 아직도 눈에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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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일 07시 00분


김경문 감독 ‘30년 전의 추억’

두산 김경문 감독. 그는 원년우승을 차지한 OB베어스의 안방마님이었다. 30년이 흘렀지만,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사진은 
3월30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30주년 기념 사진전’에서 그 시절을 회상하며 활짝 웃는 김 감독 모습. 스포츠동아DB.
두산 김경문 감독. 그는 원년우승을 차지한 OB베어스의 안방마님이었다. 30년이 흘렀지만,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사진은 3월30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30주년 기념 사진전’에서 그 시절을 회상하며 활짝 웃는 김 감독 모습. 스포츠동아DB.
OB, 82년 KS 2차전 지고 침울
김우열 형 우스갯소리에 힘이…
박철순 형은 국소마취 후 등판
역전우승 했지만 지금은 꿈도 못꿔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태동해 어느새 서른 살을 맞았다. 당시 6개에 불과했던 팀은 9구단까지 늘었고, 프로야구 관중도 600만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주먹구구식이었던 훈련법이 사라지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 도입됐고, 선발∼중간∼마무리의 투수분업화와 주루, 수비, 타격 등 코칭스태프의 보직도 세분화가 이뤄졌다. 프로야구 원년 OB 베어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현재 두산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경문 감독의 소회도 남다르다. 한 팀에 코칭스태프가 단 2명, 투수가 한 시즌에 200이닝씩 던지는 게 당연했던 시절 야구를 시작한 김 감독은 “30년간 프로야구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수많은 지도자들의 힘”이라며 “모든 지도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말문을 열었다.

○“1982년 우리를 이끌어줬던 선배들처럼”

‘1무 1패.’ 82년 한국시리즈. 전기리그 우승팀 OB는 후기리그 우승팀 삼성을 상대로 1차전 무승부에 이어 2차전을 내줬다. 특히 1차전은 OB가 5회말까지 3-0으로 앞서다가 6회초 삼성 함학수의 2점 홈런과 9회초 배대웅에 중월적시2루타를 맞으며 동점을 허용했고 이후 양 팀은 연장 15회, 4시간 33분에 걸친 혈투를 펼쳤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2차전은 삼성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OB타자들은 삼성 선발로 나온 이선희에 이어 구원등판한 성낙수를 공략하지 못하고 영봉패(0-9)를 당했다.

“1차전에서 이기다가 따라잡혔으니까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진 느낌이었다고. 그리고 대구(2차전)에서 신나게 두들겨 맞았잖아. 그땐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했으니까 라커룸 분위기가 어땠겠어.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지.”

하지만 OB는 깜짝 반전을 일으켰다. 허리부상에도 불구하고 마운드에 올라 호투한 박철순의 투혼과 더불어 3차전을 승리로 장식했고 그후 4연승 가도를 달리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철순이 형도 잘 던져줬고, 무엇보다 당시 주장이었던 (김)우열이 형부터 (윤)동균이 형 같은 선배들이 팀을 잘 이끌어줬어. 그거 알아? 우리는 한국시리즈 때 호텔에서 합숙을 안 했어. 우열이 형이 1무1패한 후에 김영덕 감독님께 ‘내가 책임질 테니까 애들 합숙시키지 말고 집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거든. 선수들이 모두 집에서 구장으로 출퇴근했는데도 똘똘 뭉쳐있었지. 이뿐만 아니야. 1무1패하고 선수들이 얼마나 침울했겠어. 그런데 우열이 형이 경기전 라커룸에서 얘기를 시작해. 처음에는 다들 심각하게 듣는데 나중에는 다 포복절도하는 거야. 한참 웃고 난 뒤에 경기에 나가니 선수들 마음이 얼마나 편하겠어. 그게 OB가 우승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나 싶어.”

김 감독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일을 마치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후배들을 현명하게 이끌어줬던 선배들의 모습을 마음속에 품고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있어. 아까 말한 선배들의 역할 같은 거지. 내가 지금 ‘감독’으로 불리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때 우리를 이끈 선배들처럼 ‘야구를 먼저 시작한 큰 형’이라는 생각으로 그라운드에 나서고 있어.”

○“프로야구 30년, 비약적 발전은 지도자의 힘”

김 감독은 포수 출신이다. 선수시절 빼어난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88년 4월 2일 열린 OB와 롯데의 개막전에서 선발 장호연과 배터리를 이뤄 ‘노히트노런’(4-0·OB승)을 기록한 주인공이다. 이제는 불멸의 기록이 된 박철순의 한 시즌 22연승과 24승(4패 7세이브 방어율 1.84)도 전 경기 전담포수였던 김 감독과의 합작품이다.

박철순은 그해 36경기에 등판해 무려 224이닝을 소화했다. 시즌 후반 허리부상으로 공을 던지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지만 한국시리즈 3차전, 국부마취제를 맞고 구원 등판해 역투를 펼쳤다. “지금 같아서는 꿈도 못 꿀 일”이지만 김 감독은 “그때는 그렇게 던지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한국프로야구는 9전전승의 금메달 신화를 쓴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준우승의 쾌거를 거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을 통해 야구강국으로 우뚝 섰다. 80년대만 해도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실력차가 현격했던 일본프로야구와 어깨를 견주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김 감독은 모든 공을 프로야구를 위해 몸 바친 지도자들에게 돌렸다.

“프로야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이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국제경기 경험을 쌓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30년간 선수들을 육성해온 모든 지도자들의 힘이라고 생각해. 그동안 수많은 지도자들이 선진야구를 배워오고 연구해서 선수들을 가르쳤으니까. 이 자리를 통해 모든 지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어.”

홍재현 기자 (트위터 @hong927) hong927@donga.com
사진ㅣ임진환 기자 (트위터 @binyfafa)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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