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서 10년째 불펜 포수하는 김대진의 ‘내 사랑 두산’

  • Array
  • 입력 2011년 1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등번호 ‘01’번 하루에 1000개 투수공 받지만
어둠 있기에 빛이 밝은 것

사진 제공 두산
사진 제공 두산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그는 정식 선수는 아니다. 사람들은 통칭 불펜 보조 요원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불펜 포수다. 불펜 포수는 경기가 아닌 불펜에서 투수들이 던지는 공을 받아주는 포수다. 화려함? 그런 것 없다. 대우? 보잘것없다. 미래에 대한 비전? 찾기 힘들다.

대부분 불펜 포수들은 한두 해 하다 살길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그는 1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어쩔 수 없는 공백이 있긴 했다. 군 복무를 위해 2006년부터 2년간 마스크를 벗었다. 제대 후엔 연어가 태어난 강을 향해 회귀하듯 두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두산의 최고참 불펜 포수 김대진(27·사진)이다.

○ 그림자를 선택하다

배명고 3학년이던 2002년 10월 어느 날 감독이 그를 불렀다. “두산에서 불펜 포수를 구한다는데 한번 해볼래?”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그는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홀어머니 밑에서 야구를 했던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취직을 하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불펜 포수로 첫발을 내디뎠다.

다른 많은 불펜 요원들처럼 그도 선수로의 신분 상승을 꿈꿨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프로로 입단한 포수들은 송곳처럼 빠른 송구를 했고 번개처럼 방망이를 휘둘렀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그는 빛이 아닌 그림자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다. “팀이 필요로 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었다.

○ 가장 일찍, 가장 늦게

불펜 요원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성실함이다. 선수들이 훈련하기 전 야구장에 나와야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뒷정리를 하고 야구장을 떠나야 한다.

이번 일본 전지훈련에서도 마찬가지. 특별타격조의 운동장 출발 시간은 오전 9시 20분이다. 그의 출발 시간은 이보다 30분가량 빠르다. 미리 가서 공을 꺼내 놓고, 배팅케이지(타격 연습하는 그물망)를 설치하고, 피칭 기계도 꺼내 놓는다. 훈련이 시작되면 더 바빠진다. 투수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공을 던진다. 그는 하루 평균 1000개가 넘는 공을 받는다. 공을 받을 때 그에겐 원칙이 두 가지 있다. 한 개의 공이라도 대충 받지 않는다는 것. “야구는 투수의 공 한 개에 승패가 갈리는 운동”이라는 게 이유다.

또 하나는 절대 투수에게 ‘공이 나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투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목이 터져라 “파이팅”을 외친다. 쉴 때는 미트를 열심히 손질해 포구를 할 때 팡팡 하는 큰 소리가 나도록 한다. 그의 등번호는 두산 선수단을 통틀어 가장 빠른 ‘01’번이다.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늦게 들어가는 그에겐 참 어울리는 번호다.

○ 내 사랑 두산

그에게 두산은 가족과 같은 팀이다. 그는 “직장이기 이전에 끈끈한 형제애가 느껴지는 팀”이라고 했다. “9년 전에 야구와 두산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는데 현재 그렇게 하고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선수들은 그를 단순한 불펜 보조 요원이 아닌 동료로 생각한다. 김경문 감독 역시 가끔 식사 자리에 초대하는 등 그를 챙긴다. 이번 스프링캠프 출발 전에는 따로 불러 정장 한 벌을 선물하기도 했다.

어느덧 불펜 포수 10년 차가 된 그는 팀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팀이 이기면 기뻐했고,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을 때면 같이 울었다. “2001년이 마지막 우승이었으니 전 한 번도 선수들과 우승의 기쁨을 함께한 적이 없어요. 올해는 마지막에 함께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빛이 밝은 것은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며 주변에 빛을 밝히는 그의 소망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