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호기심천국] 역전결승만루홈런 25점…사인미스땐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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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5일 07시 00분


프로야구 선수 연봉 고과평점은 어떻게 매기나? A구단의 사례로 보니…

두산 포수 양의지(왼쪽)가 롯데 이대호를 홈플레이트에서 태그아웃시키고 있는 모습. 포수는 홈 태그아웃, 좋은 블로킹, 도루저지를 
1번씩 하면 홈런만큼이나 높은 고과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수비가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스포츠동아DB
두산 포수 양의지(왼쪽)가 롯데 이대호를 홈플레이트에서 태그아웃시키고 있는 모습. 포수는 홈 태그아웃, 좋은 블로킹, 도루저지를 1번씩 하면 홈런만큼이나 높은 고과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수비가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스포츠동아DB
돈 버는 짭짤한 활약
상대투수 6구 이상 던지게 하면 점수 가중
병살저지 슬라이딩, 안타보다 배점 높아

돈 새는 소리 ‘콸콸콸’
선발 1회 강판 -7점…블론세이브 -10점
사인미스 한번이면 홈런 쳤어도 헛수고

불운조차도 고과에 반영
감독이 인정하는 안타성 호타구엔 1점
기록되지 않는 실책도 협의 통해 감점


8개 구단의 연봉계약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다. 연봉협상에서 선수는 선수대로, 구단은 구단대로 할 말이 많다.

이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구단의 주요무기는 고과평점이다. 안타 1개도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고과평점은 기록의 맹점을 보완해, 보다 정확한 팀 기여도를 산정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그래서 때로는 선수의 예상을 빗겨가기도 한다.

한 베테랑 타자는 “홈런·타율·타점 기록이 이전 해보다 좋아졌는데도 고과점수는 낮아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흔히 “프로는 돈”이라고 말한다. 선수들에게 가장 짭짤한 활약은 어떤 것일까. 또 ‘돈 새는 소리’가 ‘콸콸’ 들리는 플레이는 무엇일까. 수도권 A구단의 타자·투수 고과평점표를 통해 이를 살펴봤다.

○프로야구 초창기 고과평점은 허울 뿐

1980년대 해태의 연봉협상을 담당했던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국 총재특보는 “이미 프로야구의 태동부터 고과평점은 존재했다”고 말한다.

당시 해태는 교류가 잦던 일본 프로야구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의 자료를 토대로 고과평점표를 마련했다. 그리고 원년 활약을 근거로 1983년 연봉을 협상할 때도 선수별 고과평점자료를 갖고 있었다.

이 특보는 “투타 각각 항목이 40여 가지였다. 불펜대기만으로도 점수를 줄 정도로 세분화돼 있었다. 불펜대기가 잦았던 방수원이 의외로 점수가 높아 놀란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는 고과점수의 연봉반영이 미미했다.

당시에는 선동열 같은 국보급 투수도 연봉인상상한이 전년대비 25%로 묶여 있었다. 프런트의 입김이 워낙 강해 구단의지에 따라 몸값이 책정되던 시절이다.

고과평점이 실질적으로 활용되고, 그 항목이 정교해진 것은 연봉인상 상한제도가 폐지되면서부터다. 연봉인상 상한은 1995시즌부터 연봉 5000만원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로 1차적으로 사라졌고, 2000시즌부터는 완전히 없어졌다. 현재 A구단은 타자의 경우 총 128개, 투수는 총 120개 항목으로 고과평점을 매긴다.

○끈질긴 승부가 홈런 한 방보다 비싸다(?)

타자 총128개 항목을 살펴보면, ‘병살저지 슬라이딩’에도 배점이 있을 정도로 세분화돼 있다. 연봉을 산정할 때는 고과평점 뿐 아니라 KBO 공식기록도 포함되는 만큼, 고과평점은 팀플레이를 많이 고려한다.

실제로 병살저지 슬라이딩(3점)의 배점은 통상타점(2점) 보다 높다. 주자 뒤로 친 진루타(2점) 역시 공식기록에서는 범타지만, 고과평점에서는 통상안타(2점)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A팀 타자들은 상대투수를 6구 이상 던지 게 만들 때도 점수를 확보한다. 7구부터 1점씩 가중되는데, 만약 프로야구기록인 20구를 던지게 한다면, 범타가 되더라도 14점을 번다. 통상홈런(5점) 보다 나은 셈이다. A팀의 한 선수는 “볼넷과 끈질긴 승부를 강조하시는 감독님 의중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무엇보다 배점이 높은 것은 절호찬스(무사·1사·2사 2·3루, 1·3루, 만루)에서의 안타·홈런이다. 만약 역전결승만루홈런을 쳤다면, 통상홈런(5점)과 통상타점(2점×3=6점), 결승타점(5점×1=5점), 통상득점(2점)에 절호찬스안타·홈런(7점) 점수까지 더해 총 25점을 받는다.

○포수는 블로킹이 돈

포수는 수비가 우선이라는 말은 고과평점에도 반영된다. 포수의 수비부문 가·감점 항목은 다른 어떤 포지션보다 다양하다. 호(好)블로킹(3점)과 도루저지(5점), 홈 태그아웃(5점)을 1경기에 1번씩 기록했다면, 홈런 1∼2개도 부럽지 않은 점수를 받는다. 만약 팀 승리 시에는 ‘포수의 좋은 리드’라는 항목으로 5점이 더 붙는다.

반면 패스트볼(-2점)과 패스트볼 시 실점(-3점) 연결, 블로킹 미스 및 타격방해(-2점)를 하면 문책도 크다. A팀 포수는 “고과평점만 봐도 ‘포수는 수비만 좋으면 2할3∼4푼만 쳐도 되는 포지션’이라는 말이 맞다”며 웃었다.

포수의 수비능력은 투수의 고과평점과도 직결된다. 투수는 폭투(-2점) 또는 폭투로 인한 실점연결(-3점)을 기록할 때 감점이 있지만, 포수가 블로킹을 해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투수와 포수의 유대관계는 ‘벌이’에도 중요한 요소다.

○홈런 쳐도 사인미스 한 번이면 공(空)치는 날

감점항목을 보더라도, 역시 팀플레이를 저해할 때 그 폭이 크다. 주자 앞으로 진루불능타를 치면 -2점. 절호찬스 시의 병살타는 -7점까지 내려가는 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점 폭이 가장 큰 항목은 사인미스(-10점)다. A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책임추궁”이라고 했다. 태만한 플레이로 팀 분위기를 저해한 경우도 확실한 처벌이 있다. ‘슬라이딩을 하지 않아 아웃(-10점)’은 사인미스와 함께 가장 감점이 크다. 투수들은 선발의 경우 1회에 강판(-7점), 마무리의 경우 블론세이브(-10점)가 두려운 항목들.

플러스의 달콤함 만큼이나 마이너스의 혹독함도 크기 때문에, ‘적은 감점’은 고과순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통상홈런(5점)으로 1타점(2점), 1득점(2점)을 올려도 총합은 9점. 한 경기(9이닝)를 모두 소화해 이닝당 출장가산점(0.2×9=1.8점)을 챙긴다고 해도 합이 10.8점이다.

하지만 삼진(-2점)과 사인미스(-10점)를 1번씩 했다면 -12점이니, 그 날은 홈런을 치고도 마이너스 통장을 긁은 셈이다. A구단의 한 선수는 “감점이 많은 날은 ‘어제까지 해 놓은 것 다 까먹었다’며 자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선타 아웃 2개, 안타 1개의 값어치로 보상

고과평점은 매 경기 마다 구단기록원이 매기는데, 공식기록만으로는 산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안타성 호타구(1점)’라는 항목은 기록지에 따로 표기를 해야 한다.

이 항목은 불운조차 고과에 반영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2번의 호타구(1점×2=2점)가 통상안타(2점) 1개의 값어치와 같다. 야수정면타구에 아쉬움을 삼켰던 타자들은 작은 위로를 받는다.

A구단 기록원은 “이 항목의 경우 1차적으로는 기록원이 배트 중심에 맞은 타구였는지를 판단한다. 하지만 덕아웃 분위기로도 알 수 있다. 아웃이지만, 감독님께서 ‘나이스 배팅’이라며 박수를 치신다면 당연히 호타구”라고 했다.

사인미스나 태만한 백업플레이(-2점) 또는 펜스플레이(-3점) 미숙 등 ‘기록되지 않는 실책’들은 코칭스태프와의 협의를 통해 반영한다.

A구단기록원은 “사인미스는 기록원도 대충 눈치 채고 있지만, 코칭스태프에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때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여쭤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애환을 전했다.

A구단의 한 내야수는 “우리 팀 얘기는 아니지만, 분명 승부를 볼 수 있는 타구 임에도 실책으로 기록될까봐 적극적으로 따라가지 않은 선수도 있다. 이 경우 선수·코칭스태프는 태만한 플레이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고 했다. 감시자(?)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감점의 당사자가 섣불리 ‘오리발’을 내밀 수는 없다.

이렇게 매 경기의 점수가 쌓여 한 시즌이 끝나면, 고과 1·2등 선수는 1500점 내외를 확보한다. ‘몇 점 당 얼마’라고 정해진 공식은 없다. A구단은 투·타별 고과평점의 총합을 구한 뒤, 특정 선수의 평점이 총합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구한다.

그리고 이 비율에 따라 연봉인상분을 정한다. 물론 고과평점 뿐 아니라, 연차와 이전시즌 연봉 등도 고려대상이다. A구단 관계자는 “고과항목이 불펜투수들에게 불리하게 구성돼 있다는 선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2011시즌에는 이를 개선하기로 했다. 4∼5년 전 주니치의 고과항목을 보면, 지금의 우리보다 더 세분화 돼 있다. 정확한 반영을 위해서 다양한 고과항목은 필수”라고 밝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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