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 포격장면 담은 PT에 “또 평화 얘기냐” FIFA 표심 냉랭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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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2022월드컵 유치 실패

한국의 2022년 월드컵 유치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먼저 한국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른 뒤 8년 만에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나선 게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지 못했다. 정몽준 FIFA 부회장을 비롯해 한승주 유치위원회 위원장 등이 “2022년은 앞으로 12년 뒤이며 2002년부터 20년 뒤의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집행위원들의 머릿속엔 8년 전의 기억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2002년 때도 내세웠던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라는 유산을 남기자는 호소도 식상하게 느껴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 부회장은 ‘또 평화 얘기냐. 이제 그 카드는 그만 써라’고 얘기하는 집행위원에게 “한반도 상황을 잘 설명하면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프레젠테이션에서 2022년까지 월드컵을 통해 남북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강조하기보다는 월드컵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있는 자세한 그림을 그려줬다면 다른 결과를 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1일 한국의 프레젠테이션은 신선하지 않고 진부하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현장의 외신 기자들은 “프레젠테이션에서 6·25전쟁의 모습과 연평도가 포격으로 불타는 장면을 보여준 것도 표의 향방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에서는 유치 홍보에서 정 부회장에게만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도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16년 이상 FIFA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이어온 인맥을 활용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유치활동을 한 게 전혀 없다는 얘기다. 정 부회장의 노력에 비해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얻은 것도 있다. 국제 축구계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정 부회장은 “FIFA 행정의 대부분이 대서양에 인접한 국가 위주로 펼쳐진다. 아시아 국가도 목소리를 내 계속 요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국의 월드컵 유치 경쟁은 의미가 있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면 한국은 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개최지로 선정된 카타르는 중동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개선하고 동서 문화 충돌을 최소화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중동에서 사상 첫 월드컵을 열어야 한다는 호소가 통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사막의 뜨거운 날씨에도 최첨단 장비를 갖춘 시원한 경기장에서 축구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카타르는 “우리가 만든 최첨단 경기장으로 우리와 같은 위도의 뜨거운 나라에서도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취리히=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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