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아경기] 0.01초 차 金… 이연경 자신도 놀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100m 허들서 10.5m 남기고 대역전 스퍼트… 육상 女단거리 亞경기 사상 첫 우승

눈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여럿이 한데 뭉쳐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연경(29·안양시청)도 몰랐다. 카메라가 자신을 따라다니자 “나야?” 하고 물었다. 잠시 후 전광판에 기록이 떴다. 1등이었다. 이연경은 활짝 웃으며 대형 태극기를 몸에 둘렀다.

이연경이 한국 육상 여자 단거리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연경은 25일 아오티 메인스타디움에서 열린 여자 100m 허들 결선에서 13초23을 끊어 나탈리야 이보닌스카야(카자흐스탄)를 0.01초 차이로 제쳤다. 한국은 1986년 서울 대회에서 임춘애가 800m, 1500m, 3000m를 석권하는 등 중장거리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단거리는 1978년 방콕 대회에서 이은자가 200m 은메달을 딴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한국 육상이 트랙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986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전날 예선 1조에서 3위(13초22)를 기록해 7번 레인을 배정 받은 이연경의 출발 반응 속도는 0.133초로 이보닌스카야(0.129초)에 이어 2위였다. 출발은 좋았지만 첫 번째 허들까지 13m를 달리는 동안 어느새 중위권으로 처졌다. 허들은 8.5m 간격으로 모두 10개. 마지막 허들을 넘을 때까지 선두 경쟁은 4번 레인의 데라다 아스카(일본)와 5번 레인의 이보닌스카야였다. 이보닌스카야의 최고 기록은 12초82로 이연경(13초00)보다 좋다.

이연경의 레이스를 지켜보고 있던 세르게이 티바소프 코치는 걱정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럴 만했다. 이연경은 스피드가 약한 대신 기술이 뛰어나다. 허들은 기술 종목이다. 여자의 경우 83.8cm 높이의 허들을 넘을 때 체공 시간을 최소화하고 허들과 허들 사이 8.5m의 거리를 달릴 때 최대한 발놀림을 빠르게 해야 한다. 내딛는 걸음 수는 같기 때문이다. 이연경의 기술은 세계 정상급 수준이다.

이연경은 마지막 허들을 넘은 뒤 결승선까지 10.5m를 달리면서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가속도가 붙은 데다 마지막 허들도 안정된 자세로 넘어 스퍼트를 할 수 있었다. 반면 이보닌스카야는 마지막 허들을 넘어뜨리며 자세가 흐트러졌다. 데라다는 잠시 휘청거리더니 아예 뒤로 처졌다.

시상대 위에서 기쁨의 눈물을 쏟은 이연경은 “2006년 도하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뒤 4년 뒤 아시아의 별이 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말했다. 당시 13초23으로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가능성을 확인한 이연경은 4년 동안 부상과 부진을 겪었지만 타고난 신체조건(173cm, 62kg)과 주위에서 혀를 내두르는 철저한 몸 관리로 기록을 단축하며 광저우의 영광을 준비해 왔다. 남자 허들 대표 이정준(26·안양시청)과 연인 사이인 이연경은 “남자 친구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됐다. 나이가 많고, 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을 깬 게 기쁘다. 이제 시작이다. 기준 기록(12초96)을 통과해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본선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개막 전 금메달 1, 2개를 목표로 했던 한국 육상은 이날까지 3개의 금메달을 얻어 기분 좋게 목표를 초과했다. 26일에는 전날 멀리뛰기에서 우승한 김덕현(광주시청)이 세단뛰기, 도하 대회 금메달리스트 박재명(대구시청)이 창던지기에서 우승을 노린다.

광저우=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