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아경기]바둑 혼성복식 박정환-이슬아, 행운의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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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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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반 졌지만 중국 벌점으로 환호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바둑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이슬아(왼쪽)와 박정환. ‘바둑 얼짱’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슬아가 혼성복식에서 딴 금메달을 깨물어 보고 있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바둑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이슬아(왼쪽)와 박정환. ‘바둑 얼짱’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슬아가 혼성복식에서 딴 금메달을 깨물어 보고 있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장소부터 달랐다. 대회 깃발과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철책이 없었다면 경기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광저우 외곽의 3층 건물이었다. 선수를 독려하는 감독의 외침도, 관중의 함성도 없었다. 누구도 시끄럽게 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해 들리는 것은 셔터 소리와 그보다 더 간헐적으로 나오는 바둑 돌 놓는 소리였다.

22일 바둑 혼성복식이 열린 광저우기원 1층 대국장은 정중동(靜中動) 그 자체였다. ‘기사’가 아닌 ‘선수’들은 태극마크가 새겨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경기를 했다. 몸을 맞대거나 뛰지 않아도 2시간 넘게 대국을 마친 태극전사들은 지쳐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웃었다. 아시아경기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된 바둑에서 첫 메달의 영광을 그들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박정환(17)-이슬아(19) 조는 중국의 셰허-쑹룽후이 조와의 결승에서 약 3시간에 걸쳐 289수까지 가는 혈투 끝에 흑으로 반집승을 거뒀다. 계가로는 1집 반을 졌지만 중국이 대국 순서 규정을 어겨 벌점 2집을 받은 덕분에 행운의 역전승을 거뒀다. 어느 스포츠 못잖은 짜릿한 뒤집기였다. 혼성 복식은 여자(흑)→여자(백)→남자(흑)→남자(백) 순으로 돌을 놓는데 순서를 어기면 두 집을 내준다. 셰허가 긴장한 탓에 자기 차례를 잊었고 시간에 쫓긴 쑹룽후이가 어쩔 수 없이 순서를 어겼다.

동시에 열린 3, 4위 결정전에서는 최철한-김윤영 조가 대만의 저우쥔신-미싱햄 조에 290수 만에 1집 반 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표팀 양재호 총감독은 “대진 운이 좋았다면 우리 선수끼리 준결승이 아니라 결승에서 대결할 수 있었는데 그 점이 아쉽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어 단체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뻐했다.

개막 전부터 ‘얼짱 기사’로 유명해진 이슬아는 “상대가 순서를 어긴 것을 알아 이길 줄 알았는데 (박)정환이가 졌다고 하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다”며 “그동안 바둑 외적인 면에서 관심을 받아 부담이 컸는데 이제 안 그래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슬아는 광저우에 온 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긴장도 많이 하고 배도 아팠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정수리에 침을 맞은 채 대국을 했다. 결승전에서는 긴장이 더한 탓에 3분 만에 침도 뺐고 대국 도중 화장실에 달려가 세수를 하고 오기도 했다. 고교 1학년 때인 2007년 프로기사가 된 그는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8판 중 7판은 나빴던 것 같은데 기적처럼 하늘이 우승을 선물한 것 같다”고 기뻐했다. 고교생으로 출전해 일찌감치 병역 혜택을 받은 박정환은 “바둑이 처음 채택된 대회에서 한국이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게 돼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시상대 위에 함께 선 4명의 태극전사들은 애국가를 들으며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전까지 해 보지 못한 첫 경험이었다. 아쉽게 동메달을 딴 김윤영은 “앞으로도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남으면 좋겠다. 국가 대표로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광저우=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바둑 아시안 게임 첫 금 대국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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