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 사커에세이] 젊은 그대, 車보다 축구가 먼저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8월 25일 07시 00분


축구 꿈나무들의 1차 목표는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어엿한 전문직업인으로 ‘성공한 소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럽에서 프로선수가 된다는 것은 한 차원 더 높은 꿈을 이루는 셈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당연히 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대개는 그 튀고 싶은 욕망의 1차적인 대상은 ‘좋은 차’를 사는 것이다. 그래선지 프로스포츠 선수 가운데는 카 마니아들이 꽤 있다. 설기현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나가는 차를 슬쩍 보기만 해도 누가 언제 만든 차인지, 차의 장단점은 어떻고, 가격 대비 성능은 어떤지 등에 대해 줄줄이 꿰고 있다. 이 정도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다. 최근에 회사차를 한 대 더 구입하면서 필자도 그에게 가장 먼저 자문을 구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카 마니아’ 설기현의 지식은 여기까지다.

에이전트로서 선수의 차를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른 측면이 있다. 혹 저런 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행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차를 워낙 좋아하는 설기현인지라 포항 입단 후 포르쉐 한 대를 장만했는데 장기간의 부상 때문에 함께 마음고생을 해온 필자의 입장에선 솔직히 그것도 신경이 쓰였었다. 벨기에와 영국에선 그보다 더 좋은 차를 타온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요즘 신세대 선수들은 필자의 이러한 시각을 구시대적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60,70년대 격변기를 살아온 한국의 40∼50대는 ‘본분에 먼저 충실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본분’ 보다 ‘겉멋’에 관심을 두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재능을 꽃피우기 전에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감에서다.

설기현은 그래도 예외로 봐줄 수 있다. 선수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만큼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그런데 아직 어린 선수들에 대해서만큼은 필자의 이런 고집은 단호하다. 프랑스의 남태희(발렝시엔 FC) 이용재(FC 낭트), 두 19살 동갑내기들에게 필자는 올 여름에야 운전면허 취득을 허락했다. 프로선수가 부모님께 마냥 운전을 부탁하는 것도 모양이 그래서 ‘1500cc 이하’를 조건으로 운전을 허용했다. 앞으로 2시즌 동안 선발로 평균 50% 이상 출전하지 못하면 1500 cc라는 배기량 제한은 그 후 2년 더 연장된다.

다행히도 우리 선수들이나 부모들 중 그 누구도 필자의 이러한 ‘독선’에 토를 달지 않고 있다. 그건 이 같은 규제가 선수들을 짓누르고 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상에 오를 때까지 ‘본본’에 충실해야 대성할 수 있다는 필자의 믿음에 말없이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튀는 것은 그라운드에서 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타고 겉멋에 신경을 쓰는 선수들보다 유병수(인천)처럼 2년 연속 국내 득점랭킹 톱을 달리면서도 버스, 지하철을 타고 말없이 숙소생활을 하면서 차곡차곡 내공을 쌓고 있는 선수가 훨씬 미덥고 장래에 대해 확신이 간다.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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