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태극전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7일 22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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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프리카의 강호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 때 격세지감을 느꼈다. 당시 세계 22위로 디디에 드록바(첼시) 등 세계적인 선수가 많은 팀을 상대로 경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출전을 앞둔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농담을 하고 있었다. 박지성은 드록바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 지를 설명했고 선수들도 여러 방법을 내놓으며 활짝 웃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하던 현상이다."

한국 축구대표팀 주무인 조준헌 대한축구협회 과장의 말이다. 4일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0-1로 졌지만 세계 최강 앞에서 선수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부터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을 뛴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이 볼만 잡으면 어떻게 할 줄 몰라 최종 수비수인 내게 돌릴 정도로 선수들은 늘 겁에 질려 있었다'고 회고했을 정도이니 조 과장이 놀랄 만도 했다.

조 과장은 "코트디부아르 전 당시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그라운드로 나갈 때 '우리 나가서 한번 재밌게 해보자'라고 외쳤다. 주무하며 처음 본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도 "선수들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강호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 플레이를 한다"고 말한다.

세계 47위인 한국은 국제무대에서는 아직도 변방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볼턴)에 기성용(셀틱), 박주영(AS 모나코) 등 유럽파가 등장했고 일본,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활약하며 선수들의 눈은 달라졌다.

세계 수준에 맞춰져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들이 합류하면 국내파도 동화가 된다. 5일부터 남아공 루스텐버그에서 훈련하는 대표팀의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밝고 힘찬 이유다.

일부에서 '한국은 16강이 어렵다'는 분석을 한다. 객관적으로 쉽지는 않다. 하지만 '달라진' 태극전사들이 있기에 희망도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땐 거스 히딩크 감독을 통해서 변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달라졌다. 사상 첫 원정 16강, 기대해보자.

루스텐버그=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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