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펀 월드컵]월드컵은 ‘죽음의 조’를 먹고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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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회의 흥미를 개막 이전부터 고조시키는 요소들 중 하나는 ‘죽음의 조’다. 이는 월드컵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1998∼199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선 FC 바르셀로나(바르사),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덴마크 명문 브뢴비가 한 조를 이뤘던 역사가 있다. 이 조는 히바우두와 루이스 피구가 포진했던 바르사의 조기 탈락을 초래했으며, 결승전에서 재회한 맨유와 뮌헨의 세 번째 대결은 결국 맨유의 기념비적 3관왕으로 귀결됐다. 유로 2008에도 극명한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루마니아로 구성된 죽음의 조는 네 팀 모두에 기회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압도적 경기력을 과시한 네덜란드의 전승이었고, 저조한 세 팀 중 그나마 나았던 이탈리아가 가까스로 조별리그를 통과한다. 결과적으로 네덜란드엔 ‘죽음’이 아닌 ‘삶’의 조였던 셈이며 나머지 팀들에는 지옥 그 자체였던 경우다.

○ 1982년 아르헨-브라질-伊 3팀 사투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무시무시했던 죽음의 조는 어디였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필자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탈리아로 구성됐던 조로 생각한다.

이 가공할 조는 조별리그를 통과한 12팀이 다시금 4개의 조로 나뉘어 펼치는 ‘2차 조별리그’ 제도로 가능했다. 한 팀만을 가려내야 하는 이 조에서 당초 가장 약세로 평가받던 팀은 이탈리아. 그도 그럴 것이 지쿠, 소크라테스, 팔카우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이는 브라질은 펠레 시대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당대 최강팀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에는 마리오 켐페스, 오시에 아르딜레스에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가 가세해 있었다. 그러나 이 죽음의 조에서 승자는 놀랍게도 이탈리아였다. 특히 브라질전 해트트릭의 주인공 파올로 로시는 승부 조작 혐의로 인한 2년의 징계를 딛고 월드컵 최고의 선수에 오르는 인생 역전에 성공한다.

○ 남아공서 B조도 지옥 경험 할수도


월드컵 죽음의 조는 이뿐만이 아니다. 1958년 브라질, 잉글랜드, 소련, 오스트리아가 함께 했던 조는 원조로 평가될 만하다. 1986년 서독, 우루과이, 덴마크, 스코틀랜드로 구성된 조는 죽음의 조라는 표현을 유행시켰다.

1998년의 죽음의 조(스페인, 나이지리아, 파라과이, 불가리아)에선 스페인이 고배를 들었고, 2002년에는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가 죽음의 조(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에서 눈물을 쏟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C조(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트디부아르)와 E조(이탈리아, 체코, 가나, 미국)가 모두 죽음의 조로 불렸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남아공에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죽음의 조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A조(남아공, 프랑스, 멕시코, 우루과이)는 물론이고 D조(독일, 세르비아, 가나, 호주) 역시 16강 진출 팀의 윤곽이 잘 안 보인다. 강호들의 틈바구니에 북한이 존재하는 G조(브라질,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 북한)의 흥미로움은 말하면 입 아프다. 여기에 우리가 속한 B조(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대한민국, 그리스) 또한 언제든 죽음의 조가 될 잠재력이 있다.

A조를 최대 격전지로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프랑스의 상태가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까닭이다. 상대적으로 우루과이와 멕시코가 만만치 않은 능력을 지닌 데다 남아공에는 개최국의 이점이 있다. 우리가 속한 조에선 아르헨티나가 가장 앞서 있으나 다른 세 팀이 미세한 승부를 벌일 공산이 크고, 아르헨티나가 기대치에 미달할 경우 한마디로 혼미한 정국이 될 수도 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 junehhah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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