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김 18번홀에 울다 18번홀서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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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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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타차 앞서다 동타 허용… 연장 첫 홀서 우승샷
부상… 실연… 2년 긴 슬럼프 딛고 PGA 3승째

《앤서니 김(25)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셸휴스턴오픈에서 우승했다. 미국 텍사스 주 험블의 레드스톤GC 토너먼트코스(파72)에서 열린 4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본 테일러(미국)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이겼다. 앤서니 김은 2008년 AT&T챔피언십 이후 21개월 만에 통산 3승째를 거뒀다. 우승상금은 104만4000달러(약 12억 원).》

○ 울고 웃은 마지막 홀

앤서니 김은 2타 차 선두로 18번홀(파4) 티박스에 오를 때만 해도 쉽게 우승하는 듯했다. 하지만 티샷과 두 번째 샷을 연이어 벙커에 빠뜨리며 보기를 했다. 이 홀에서 극적인 5.5m 버디를 잡은 테일러에 동타를 허용했다. 18번홀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앤서니 김의 3번 우드 티샷은 280야드를 날아가 페어웨이에 떨어졌다. 이번 대회 나흘 만에 처음으로 이 홀 페어웨이에서 두 번째 샷을 한 그는 공을 핀 8.5m에 떨어뜨린 뒤 2퍼트로 먼저 홀아웃했다. 반면 티샷과 두 번째 샷을 벙커에 빠뜨린 테일러의 5.4m 파 퍼트는 컵 30cm 앞에서 멈췄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순간이었다.

○ 아픈 만큼 성숙

2008년 앤서니 김은 23세의 나이에 2승을 거뒀다. 타이거 우즈 이후 25세 이전에 한 해 두 번 이상 우승 트로피를 든 것은 그가 처음. 강한 자존심으로 유명한 그는 세상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손가락과 어깨 부상에 허덕인 데다 여자친구와 결별하며 무관에 그쳤다. 세 차례 톱10에 다섯 차례 예선 탈락의 민망한 성적.

시련을 겪은 앤서니 김은 게으른 천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기본에 충실하며 훈련에 매달렸다. 집 뒷마당에 퍼팅그린까지 만들어 몇 시간씩 퍼터와 씨름했다. 이번 대회에서 그의 티샷은 23번만 페어웨이를 지켜 41%의 안착률에 불과했다. 티샷은 번번이 수풀과 벙커를 헤맸다. 이날 17번홀에서는 경기 진행요원의 가슴을 맞히기도 했다. 제 성질에 무너졌을 법했으나 달랐다. 냉정을 유지한 채 정교한 쇼트게임과 퍼트로 위기를 헤쳐 나갔다. 역대 네 번째로 낮은 페어웨이 안착률로 우승한 앤서니 김은 “2년 전만 해도 내 캐디백을 물속에 처박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연장전에서 칠 클럽이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 더욱 뜨거워진 명인열전


앤서니 김의 부활은 8일 개막하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호랑이 잡는 사자로 불린 그가 되살아나면서 5개월 만에 복귀하는 우즈와의 대결도 볼만하게 됐다. 불혹을 넘겨 전성기를 되찾은 어니 엘스(41)는 최근 연속 우승하며 그린재킷을 향한 희망을 밝혔다. 유방암에 걸린 아내와 어머니를 치료해준 의사에게 이날 막판 3개홀 캐디를 맡긴 필 미켈슨은 후반 들어 6연속 버디를 잡으며 순위를 공동 35위(2언더파)까지 끌어올려 워밍업을 마쳤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못잊을 한 주… 철든 것 같아”


2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앤서니 김은 인내와 노력을 비결로 꼽았다. 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홈페이지에 실린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잊지 못할 한 주였다. 철이 좀 든 것 같다. 실수를 하거나 3퍼트를 해도 입을 내밀 이유는 없다.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승도 없이 부진했던 그는 “시즌이 끝난 뒤 불평만 늘어놓았다. 부상 때문에 연습을 못해도 우승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훈련하며 나쁜 태도를 없애려고 애썼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앤서니 김은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데도 모험에 가까운 코스 공략을 펼쳤다. 전날까지 사흘 연속 버디를 잡았던 15번홀(파5)에서는 드라이버로 두 번째 샷을 하다 파에 머물러 더 달아날 기회를 날렸다. 이에 대해 그는 “내 몸에는 보수적이라는 뼈(기질)가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18번홀에서 파 퍼트를 놓쳐 연장전을 허용했을 때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경기가 끝난 게 아니다. 우승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결국 우승컵을 안은 그는 “내 정체성을 찾았다. 아주 편한 상태다. 자신감을 되찾은 게 큰 수확”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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