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겨울패럴림픽] ‘의족 레이스’ 5373km… 30년전 ‘폭스의 도전’ 聖火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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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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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일만에 암 퍼져 대륙횡단 중단… 이듬해 사망
개회식서 ‘장애극복 꿈’ 기려… 부모가 성화주자로

장애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스포츠를 좋아하던 19세 청년은 1977년 3월 악성골종양 판정을 받았다. 몇 개월 전 교통사고의 후유증이라 생각했지만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이었고 오른쪽 무릎 위 약 15cm까지 잘라야 했다.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그는 우연히 마라톤 잡지를 보게 됐다. 뉴욕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의족을 한 채 완주한 딕 트라움 얘기였다.

그는 수술 후 병원에 머물렀다. 16개월에 걸친 치료가 끝나자 그는 의족을 하고 마라톤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9년 10월 캐나다 암 협회에 편지를 썼다.

“내 이름은 테리 폭스, 절단 장애인입니다. 2년 6개월 전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수술 전날 농구 코치가 보여 준 장애인 마라토너의 기사를 읽고 결심했습니다. 내 장애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꿈을 주기 위한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내년 4월 암 치료 기금을 모으기 위해 캐나다를 횡단할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암으로 고통 받는 모든 이에게 기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른 다리에 의족을 한 테리 폭스가 1980년 캐나다 횡단 마라톤에서 힘겨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그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지만 30년 뒤 캐나다 밴쿠버 장애인겨울올림픽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 다리에 의족을 한 테리 폭스가 1980년 캐나다 횡단 마라톤에서 힘겨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그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지만 30년 뒤 캐나다 밴쿠버 장애인겨울올림픽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980년 4월 12일. 폭스는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주 세인트존스의 바닷가에서 위대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마라톤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의족은 쉽게 고장 났고 상처는 아물 날이 없었다. 추위와 무관심은 또 다른 고통이었지만 그는 계속 달렸다.

외로웠던 레이스는 점차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수많은 시민이 응원을 했고 언론의 카메라도 따라 붙었다. 그의 진심을 오해하는 여론도 생겼다. 그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닙니다.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폭스는 143일 동안 5373km를 달렸다. 하루 37.6km를 매일 뛰는 강행군. 그러나 암 세포는 그의 쇠약해진 몸을 그냥두지 않았다. 암은 폐까지 퍼졌고 1980년 9월 1일을 마지막으로 대륙 횡단(총연장 약 8000km)은 중단됐다. 그는 울며 말했다. “내가 끝내지 못해도 누군가 희망의 마라톤을 계속해야 합니다.” 암과 싸우던 폭스는 이듬해 6월 눈을 감았다. 생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건 위대했다. 그는 1980, 81년 2년 연속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고, 최연소로 캐나다 최고 시민 훈장 ‘오더 오브 캐나다’를 받았다. 그가 달리기를 중단했을 때 170만 달러였던 모금액은 그가 생을 마쳤을 때 2300만 달러로 늘어났고 최근 5억 달러를 넘겼다. 매년 9월이면 캐나다 5000여 개 학교가 ‘테리 폭스 달리기 대회’에 참가한다. 세계 50여 개국도 동참하고 있다.

13일 밴쿠버 BC플레이스에서 열린 밴쿠버 장애인겨울올림픽 개회식은 ‘젊은 영웅’ 테리 폭스를 위한 자리였다. 행사 주제 ‘한 명이 다수를 움직인다(One Inspires Many)’는 그가 생전에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밴쿠버올림픽조직위원회는 2월 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BC플레이스 앞 한쪽 벽에 그의 사진을 새겼다. 역경을 딛고 감동을 준 선수를 위해 테리폭스상도 만들었다. 조아니 로셰트(피겨·캐나다)가 이 상을 받았다. 이날 폭스의 부모 롤리 폭스 씨와 베티 폭스 씨는 성화 주자로 BC플레이스에 등장했다. 관중석에는 숙연함이 흘렀다.

폭스는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대륙 횡단을 시도한 해로부터 꼭 30년이 지나 밴쿠버의 성화로 타올랐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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