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황태훈]엄동설한에 경기하라고?… 서러운 고교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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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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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경기대표에 연습시간 줘야” 내년 프로야구 1주일 앞당겨
황금사자기 잠실구장 사용… “잔디보호때문에 안돼” 난색
KBO-야구협회는 방관만

“잠실야구장의 잔디가 야구 꿈나무 보호보다 더 중요합니까?”

한 야구 관계자는 고교야구의 열악한 현실을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내년 프로야구 개막을 3월 27일로 추진하고 있다. 평소보다 일주일 이상 앞당겨졌다. 중국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가 11월 시작돼 야구 대표팀을 운영할 시간이 빠듯하다는 게 이유다.

그 불똥이 고교야구에 떨어졌다. 해마다 가장 먼저 열리는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파행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황금사자기는 매년 3월 하순 전국 50여 개 고교팀이 모두 참가하는 대회다. 하지만 올해는 개최 시기조차 잡지 못했다. 프로야구 시즌을 피해 대회 일정을 앞당기면 고교 선수들은 엄동설한 속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 제 실력을 내기 어렵고 부상 위험도 높아진다.

그럼에도 아마추어 야구를 관장하는 대한야구협회와 프로야구를 운영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안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KBO 관계자는 “프로선수가 주축이 된 야구대표팀이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앞서 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시즌을 앞당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와 두산에 황금사자기 결승전이라도 잠실야구장에서 열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 보라”고 했다.

이에 대해 LG와 두산이 공동 운영하는 잠실구장 운영본부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은 LG나 두산 경기가 매일 열려 하루 4, 5경기를 치르는 고교야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영본부의 한 관계자는 “프로야구를 쉬는 월요일은 물론이고 시범경기 기간에도 잔디 관리 차원에서 (고교야구를) 허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목동야구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야구협회는 고교야구대회를 축소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6월 고교야구 정상화를 위해 현재 4개인 전국대회를 2개로 줄이고 주말리그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봄과 여름에 열리는 일본 고시엔대회가 모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체육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협회 측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고교야구는 양이나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한국 고교야구팀은 50개, 일본은 4000여 개에 이른다. 국내 고교야구 대회는 전국, 지방을 합쳐 9개다. 전국대회를 제외하곤 지역 학교들이 번갈아 출전한다. 반면 고시엔대회는 봄에 우수 팀을 초청하고, 여름에는 지역별 예선에서 수십 경기씩을 치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본의 선진화된 고교야구 시스템을 열악한 국내 고교야구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고교야구는 아마추어 야구의 메카였던 동대문야구장이 2007년 12월 철거된 뒤 갈 곳을 잃었다. 서울시가 대체 구장으로 내놓은 고척돔구장은 2011년 이후에나 지어질 예정이다. 구의동 등 간이야구장들은 사회인 야구를 하기에도 부실하다.

야구계는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프로야구 최다 관중 돌파로 들떠 있다. 그러나 정작 야구의 뿌리인 고교야구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입으론 야구 꿈나무 육성을 강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고교야구는 프로 일정에 치이고,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엘리트 선수를 위해 희생양이 되고 있다. 뿌리가 없는 야구는 신기루일 뿐이다.

황태훈 차장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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