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前감독 “성적 나빠 물러날 각오 했지…다 내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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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0일 21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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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를 떠난 지 40여 일. 한화 김인식 고문의 얼굴은 감독이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는 오랜만에 얻은 휴식을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이라고 여겼다. 김 고문은 “2004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요즘 건강이 가장 좋은 것같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그라운드를 떠난 지 40여 일. 한화 김인식 고문의 얼굴은 감독이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는 오랜만에 얻은 휴식을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이라고 여겼다. 김 고문은 “2004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요즘 건강이 가장 좋은 것같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프로야구 한화 김인식 고문(62)은 1년 전만 해도 가장 바쁜 감독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4일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인식 호'가 공식 출범한 건 20여 일 뒤였지만 이미 그때부터 김 고문의 머릿속은 대표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물론 한화 감독으로서 팀도 챙겨야 했다. 대전과 서울을 수시로 오갔다. 하지만 이제 김 고문은 한가하다. 한화와의 3년 계약이 끝났고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9일 김 고문을 만났다. 마침 이날 김 고문은 프로야구인 모임인 일구회가 주는 일구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침부터 기자들 전화가 계속 오더라고. 무슨 일인가 했지. 오늘 그걸(일구대상) 보도자료로 돌린 거야. 야구인들이 주는 상이니 의미가 깊지. 하지만 좀 아쉬워. WBC 덕분에 받는 건데 이왕이면 우승했으면 좋았잖아. 허허."

김 고문은 '한화 감독'으로 상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9월 25일 삼성과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더는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2-1로 이기고 그에게 마지막 승리를 선물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엎드려 떠나는 그에게 큰절을 했다.

"울컥했어. 예상 못한 일이었거든. 선수들한테는 많이 미안해. 대표팀을 맡는 바람에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어. 부상 선수는 왜 그리 많이 나왔는지…. 다 내 탓이야."

말 많았던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이 궁금했다. 내심 하고 싶었던 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무슨 소리야"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2006년 1회 대회 때도 (몸이 안 좋아) 너무 힘들었는데 그걸 또 하고 싶겠어. 그런데 결국 하일성(전 KBO 사무총장)한테 당했지(웃음). 대전에서 마무리 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연락이 왔어.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지. 저녁을 안 먹었던 참이라 한쪽 방에서 밥을 먹다 홀에 있는 하 총장을 쳐다봤는데 컵에 가득 담긴 술을 한 입에 털어 넣는 거야. 밥을 먹다 다시 쳐다봤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또 '원샷'을 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대표팀 감독 얘기를 꺼내더라고. 내가 쳐다볼 때만 술을 마신 건데 그때는 몰랐지. 나중에는 윤동균(KBO 기술위원장)까지 오더니 절을 하며 부탁을 했어.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다음 날 KBO가 나한테 감독을 요청했다는 기사가 나온 거야. 팬들이 '축하한다'는 말까지 하는 상황에서 안 맡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

그는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말로 선수들을 독려하며 대표팀을 꾸렸다. 한국은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강팀들을 잇달아 격파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일본에 아쉽게 졌지만 국민들은 '감동의 3월'을 만끽했다. 하지만 영광의 대표팀과 달리 한화는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처졌다. 결국 창단 첫 해인 1986년 최하위를 기록한 이후 23년 만에 꼴찌의 수모를 겪었다. 조심스럽게 나돌던 감독 교체설은 현실이 됐다.

"각오는 하고 있었어. 성적이 너무 안 좋으니 할 말이 없지. 마지막 경기에서 선수들이 절하는 걸 보니 '이제 끝이구나' 실감이 나더라고."

1991년 쌍방울 사령탑으로 데뷔한 김 감독은 1995년부터 두산(OB) 감독으로 9년을 보낸 뒤 2004년 한 해를 쉬고 2005년 한화에 부임했다. 5년만의 휴식이다.

"1주일에 2번씩 침을 맞아. 매일 걸으며 운동도 하고. 일요일마다 집 근처 호프집에서 이종도 등 야구인들을 만나는 것도 낙이야.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요즘 건강이 가장 좋아."

김 고문은 통산 1000승에 20승만 남겨뒀다. 언제 채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그라운드에 돌아올 수 있을까.

"그건 내가 알 수 없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잖아."

만일 그가 대표팀을 맡지 않았어도 한화는 꼴찌를 했을까. 최하위가 아니었다면 김 고문은 재계약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구를 탓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걸 내가 지고 간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 야구는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이제는 갚을 차례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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