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대산, 암릉-다래가 반겨주는 천하명당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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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일 1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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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날짜를 잡은 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으면 갈팡질팡한다. ‘취소해야 하나? 가야 하나?’

그래서 나는 산행 공지를 할 때 “우천과 관계없이 갑니다” 라는 사족을 단다. 웬만큼 등산한 사람들은 산행 도중에 갑작스런 일기변화로 비나 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항상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경험 있는 산악인의 배낭 안에는 방수 윈드자켓과 오버트라우저가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2009년 10월 17일(토) 전날 일기예보는 비였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돌풍이 오전까지 계속되고 차차 갠다고 했으니 걱정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나 아침 날씨는 약한 빗발이 가끔 뿌리는 정도였다. 잠실에서 출발,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나간 다음 우회전하자마자 좌측에 있는 기덕휴게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컬럼비아 테스터들과 합류하였다.

운무가 오락가락하는 산행은 또다른 묘미가 있다. 구봉대산(870m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은 최근에 알려진 산이다. 강원도 영월군과 평창군, 횡성군 3개 군의 경계에 사자산(獅子山 1120m)이 있는데 이 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상에 있다. 아홉 개의 산봉우리로 되어 있으므로 구봉대산(九峰臺山)이라 한다. 구봉대(九峰臺)는 법흥사 적멸보궁의 명당터를 보호하는 우백호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구봉대 능선에는 절골에서 도원리의 상터로 가는 널목재와 엄둔으로 넘어가는 능목재가 있다. 당일 코스로 적당한 3~4시간 코스로서 조망도 뛰어나고 접근도 좋다. 영월 주천강을 끼고 들고 나는 법흥계곡의 수려하고 편안한 도로주변 풍광은 그것만으로도 도시 탈출의 기분을 충족시켜준다.

단풍이 입술에 살짝 내려앉았다.
단풍이 입술에 살짝 내려앉았다.
구봉대산의 모산은 사자산과 백덕산(1350m)이라 할 수 있고 남서쪽에 있는 치악산, 감악산과 마주하고 있다. 산세로 보면 적멸보궁이 있는 법흥사 터는 좌청룡 우백호 형세의 천하 명당자리다. 대동여지도에 사자산, 백덕산 사이 골짜기를 도화동(桃花洞)이라 하였으니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구봉대산의 능선에서 백덕산을 바라보면 명당의 형세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법흥사 입구는 널찍하고 주차하기도 편리하지만 터의 기운이 온화하고 마음을 감싸는 기분이 든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하는데 법당내부에 불상이나 탱화를 모시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여러 사찰에 많이 있다. 그리고 계속 새로운 적멸보궁이 생긴다. 법흥사와는 무관한 얘기지만 외국의 사찰에서 진신사리를 기증받았다고 전한다. 전 세계의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두 모으면 얼마나 될까?

산길을 오른다. 컬럼비아 필드테스터들이 2년 가까이 함께 산행하다보니 어느 정도의 산행문화가 형성되었다. 우선 보행 중 조용하다. 그리고 서로 양보하고 리더(선두, 중간, 후미)에게 협조적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모두 밝으면서도 신중하게 산행하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다. 촬영하는 대원, 지도와 비교하며 기록하는 대원, 제품테스터의 소감을 서로 주고받기도 하면서 우리는 능선에 올라섰다.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9개의 봉우리마다 뜻을 담아놓아 산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1봉부터 9봉까지 봉우리 이름을 붙이고 표지판을 세웠다. 각 봉우리는 9개로 명확히 구별되는 독립봉 이라기보다는 암릉과 전망대가 어우러진 연속된 능선상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연이어 있다.

하산길의 즐거운 여성대원
하산길의 즐거운 여성대원
윤회봉의 전망도 일품이다. 봄날 이곳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면서 산의 기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봉대산에서 또 하나의 멋은 소나무다. 구봉대산은 전반적으로 바위산에 가깝고 능선의 폭이 좁은 편이다. 그럼에도 능선 상에는 소나무들이 매우 잘 자라고 있다. 수령 100년을 넘는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좁은 능선이라서 소나무 뿌리가 모두 바위에 노출되어 그 강인한 생명력을 잘 보여준다. 인생의 아홉 고비와 소나무! 연결이 될 듯 말듯... 하여간 소나무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원 중 누군가가 ‘소나무는 가을에 기운을 발산한다’고 하자 모두들 ‘소나무껴안기’를 하며 즐거워한다. 하산은 능선을 따라서하다가 계곡으로 내려서면 법흥사다. 법흥사에서 산의 오른쪽으로 올라갔다가 왼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하산 길에는 많은 다래가 반겨주고 있었다. 낙엽 위에 떨어져 곶감처럼 적당히 숙성된 다래는 구봉대산 이야기의 마지막 점을 찍어주는 듯 했다.

이규태 마운틴월드 대표 master@mountainworl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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