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사이클 대회와 방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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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일 1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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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19일 오후 3시 경,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문.

갑자기 하늘 위에서 '따따따~다'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헬리콥터 한대가 나타났다. 이 헬기는 당시 동아일보사가 소유하고 있던 '종달새 호'. 헬기의 축하 비행 속에 동아방송의 실황 중계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날 고려대를 결승점으로 하는 제 7회 동아사이클대회 마지막 10구간을 동아방송이 생중계한 것이다. 동아일보사는 4·19 의거를 기념하는 동아사이클을 위해 비행기를 띄우고 생방송을 했다.

11월 8일 서울에서 열리는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는 이런 동아사이클을 12년 만에 부활시킨 것이다. 1968년부터 1997년까지 30년 간 개최되다 중단된 동아사이클을 이어받아 열리는 대회인 셈이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세계 3대 도로사이클대회로 불리는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일주 사이클대회), 지로 디탈리아(이탈리아일주사이클대회), 부엘타 아 에스파냐(스페인일주사이클대회) 모두 신문사가 대회를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투르 드 프랑스는 1903년 7월1일 시작됐는데 당시 일간지 아우토의 편집장인 앙리 드그란쥬와 헤오 르페브레가 경쟁사인 벨로사를 능가할 묘안을 찾다가 만든 대회. 투르 드 프랑스는 이후 1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로 디탈리아는 1909년 5월 13일 시작됐고 주최사는 일간지인 가제타 델로 스포트 지였다. 지로 디탈리아의 종합 우승자에게는 핑크색 상의인 '마리아 로자'를 입히는데 이 핑크색이 바로 가제타 델로 스포트 지의 종이색이다.

프랑스의 아우토와 이탈리아의 가제타 델로 스포트가 사이클 대회를 창설하면서 판매 부수에 엄청난 상승을 가져오자 자극을 받은 것은 스페인의 일간지 인포르마시오네. 이 신문도 1935년 사이클 대회를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부엘타 아 에스파냐다.

이렇게 신문사들이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를 주최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는 유일한 매스미디어 매체로서 신문사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 하지만 신문은 나중에 등장한 TV에 차츰 영향력을 빼앗겨왔고 최근에는 인터넷의 등장 등 다양화된 미디어 매체로 인해 점점 '기울어가는' 매체가 되면서 이런 큰 스포츠 이벤트를 만들 엄두를 좀처럼 못 내고 있다.

반면 신문의 위치와 영향력을 대신하게 된 TV는 그 매체적 속성으로 광고와 연결된 시청률에 연연하게 되고 이에 따라 스포츠도 '돈이 벌리는' 인기 종목이나 올림픽 월드컵 같은 큰 이벤트에만 주력하는 실정이다.

필자가 보기에 스포츠는 어느 종목이나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재미의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상파는 물론 스포츠 전문 케이블 TV까지 서너 개 방송사가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사이클 같은 비인기 종목은 중계 한번 해주는 것조차 바라지도 못할 상황이 됐다.

이런 면에서 다양한 방송 환경을 보장하는 방송법이 실시되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방송사가 생기면 사이클과 같은 비인기 종목 경기 때도 비행기가 뜨고 생중계가 되는 꿈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다.

권순일 |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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