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얼짱’ 조해리 “살기조차 싫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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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5월 17일 1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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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얼짱(얼굴짱의 줄임말)이라고요? 기자님 농담도 잘하시네요.”
‘쇼트트랙계 얼짱’이라고 칭찬하자 조해리(23.고양시청)가 정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귀여운 외모 덕에 제법 인기가 있을 것 같아 던진 첫 질문이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며 극구 부인했다.
곧이어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자 조해리는 “남자들이 저를 여자로 봐줄까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5월의 첫 날.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고양어울림누리 얼음마루(빙상장)에서 미녀 쇼트트랙 선수 조해리를 만났다. 인터뷰를 마친 뒤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한껏 멋을 낸 그녀는 인터뷰 내내 털털한 매력을 발산, 우여곡절 끝에 태극마크를 단 감동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 1%의 재능과 99%의 노력
아버지 조상구(64)씨와 어머니 유인자(57)씨 사이에서 늦둥이 외동딸로 태어난 조해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 해 겨울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조해리는 단지 취미로 시작했던 운동이었지만, 그의 천부적인 재능은 빙판 위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강습 선생님이 더 큰 곳에서 제대로 배워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래서 목동아이스링크로 장소를 옮겨 정식으로 스케이트 타는 법을 배웠는데 3개월 만에 1~2년 배운 언니, 오빠들보다 더 잘 탔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부터 조해리는 타고난 재능에 피나는 노력까지 더해 얼음 위를 달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레슨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방과 후에도 굵은 땅방울을 흘렸다.
“천재가 아니기에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쇼트트랙은 노력 없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 2002년 첫 번째 좌절 그리고 희망
2002년은 조해리에게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 해다. 2001년 중학생 때 한국 주니어 대표로 선발됐던 조해리는 이듬해 1월 춘천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1000m 1위, 1500m 2위에 입상하며 주니어계를 평정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에게 불어 닥쳤던 시련은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그의 첫 올림픽 도전이었던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나이 제한에 막혀 출전이 좌절된 것이다. 1986년 7월 29일생인 조해리는 올림픽 직전 해에 만 15세(7월 1일 이전 출생)이상이 돼야 한다는 복잡한 규정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실력으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어요. 4년 뒤에는 반드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 확신했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조해리.
# 두 번째 도전 실패…“살기조차 싫었다”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미끄러졌던 조해리는 다시 출발선에 서서 4년을 기다렸다. 매년 최정상의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땀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올림픽 출전의 꿈은 한 순간의 실수로 물거품이 됐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전을 앞두고 발가락 부상을 당한 것.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타박상이 경기 당일 발목을 잡았다. 그동안 고생했던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자 조해리는 삶의 의지조차 포기해 버렸다.
“눈앞에서 기회가 사라지니 다 끝난 느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 밖에 나질 않지만, 자살 사이트에도 가입해봤습니다. ‘왜 나만 안 될까’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살아가니 부상도 잦았어요. 당연히 스케이트도 그만타고 싶었죠.”
그렇게 흔들리던 조해리는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조해리가 쉽게 포기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족들은 조해리가 마음을 고쳐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탰고 모지수 현 고양시청 감독 역시 든든한 조력자로 그녀의 부활을 도왔다.
“당시 부모님은 저보다 더 마음이 아프셨을겁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믿음을 주셨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제 입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조언도 해주셨어요.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지금의 조해리는 없을 겁니다.”
# 두뇌 플레이로 중국 왕멍의 벽 넘는다
다시 4년이란 시간이 흐른 2009년. 조해리는 어느덧 중고참 선수가 됐다. 그리고 지난달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쥐었다. 무서운 신예들과 선배들이 많아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1등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자 8년의 기다림은 행복한 결실로 다가왔다.
오랜 숙원을 푼 조해리는 내년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릴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꿈꾸꼬 있다. 조해리는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심리적인 부담과 체력적인 문제가 신경 쓰인다고 걱정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금메달을 향한 의지로 타오르고 있었다.
“남은 시간 지구력 보완과 경기운영 능력 향상이 급선무입니다. 부상도 없어야 하겠죠. 그리고 왕멍이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두뇌 플레이를 펼쳐 이길 자신도 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하는 날을 기대해주세요.”
환한 미소를 지은 조해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글·사진=김진회 동아닷컴 기자 manu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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