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19년을 기다렸다, 황금사자야”

  • 입력 2009년 4월 3일 03시 02분


1회 3점 끝까지 지켜… 천안북일에 3대0 완봉승

봄소식을 전하는 개나리는 충암고를 향해 방긋 피어올랐다. 교화(校花)가 개나리로 같은 서울의 충암고와 충남의 천안북일고. 최고 역사와 전통의 제6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만난 두 학교의 ‘개나리 결투’에서 충암고가 활짝 웃었다.

충암고는 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북일고와의 경기에서 3학년 투수 문성현의 눈부신 역투에 힘입어 3-0 완승을 거뒀다. 심재학(히어로즈 코치) 등이 활약한 1990년 44회 대회 이후 19년 만에 다시 황금사자 트로피를 품에 안은 것.

문성현은 2회초 1사 만루 위기 때 마운드에 올라 7과 3분의 2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아내며 7안타 무실점으로 북일고 강타선을 잠재워 승리의 수훈갑이 됐다. 이번 대회 팀의 전 경기인 5경기에 모두 나가 21과 3분의 2이닝 동안 1실점하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승부는 초반에 갈렸다. 충암고는 1회말 제구력 난조를 보인 북일고 마운드의 연속 볼넷 3개로 맞은 1사 만루 기회 때 5번 타자 김우재의 2타점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충암고는 계속된 2사 1, 3루 기회에서 7번 타자 김기남의 안타로 1점을 더 달아나며 승부를 갈랐다.

2002년 56회 대회 이후 7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 북일고는 충암고(3개)보다 3배 이상 많은 10개의 안타를 때리고도 타선의 응집력 부족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북일고 타자들은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타자로 자리매김한 모교 선배 김태균(한화)이 선물한 나무 방망이를 들고 나섰으나 효험을 보지는 못했다. 김태균은 후배들의 선전을 위해 20자루의 나무 방망이를 선물했다.

1회 3점을 내준 북일고는 2회초 반격에 나서 1사 만루 기회를 잡았지만 후속 타자들이 삼진으로 맥없이 물러나면서 반격에 실패했다. 북일고는 7회초 2사 2, 3루 기회도 삼진으로 날렸고 8회 무사 3루 찬스에서도 다음 타자들이 내야 땅볼과 삼진으로 물러나 완봉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승전에는 두 학교 재학생과 동문 등 6000여 명의 관중이 찾아 모처럼 고교 야구의 열기를 느끼게 해 고교 야구 시즌 개막 대회인 황금사자기 결승전을 더욱 빛나게 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MVP 충암고 문성현

5경기 모두 출전, 21이닝 1실점 ‘괴력투’

우승을 확정한 충암고 선수들은 3루 응원석을 향해 큰절을 했다. 모두 일어난 뒤에도 한 선수만 엎드린 채로 있었다. 3-0으로 앞선 2회 1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9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은 3학년 문성현이었다. 위기에서 충암고를 지켜낸 문성현은 제63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대회를 시작했을 때부터 MVP가 꿈이었어요. 2회 삼진 2개를 잡고 위기를 넘기며 확신이 생겼습니다.”

문성현은 서울 남정초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유격수로 뛰며 익힌 수비 실력이 이날도 빛을 발했다. 8, 9회 3차례나 투수 앞 땅볼을 완벽하게 처리하며 ‘제5의 내야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직구가 최고 140km 정도로 그리 빠른 편은 아니지만 제구력이 좋다. 스카우트들의 표현대로라면 구위보다 두뇌와 배짱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다.

“두산 임태훈 선배의 공격적인 피칭이 좋아요. 저도 그런 투수가 되고 싶어요.”

문성현의 올해 목표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청소년대표가 되는 것. 다른 하나는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는 것이다. “올해 첫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만큼 남은 대회에서 우승컵 하나는 더 안고 싶어요. 물론 그때도 제가 MVP가 되고 싶습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우리 선수들 끝까지 믿었다

▽충암고 이영복 감독=선수들이 정말 잘해줬다. 1회 기회를 살려 선취점을 뽑고 2회 위기 때 바로 문성현으로 투수 교체를 해 막은 게 들어맞았다. 겨울훈련 동안 수비훈련을 열심히 한 게 주효했다.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한 김기남과 안승한 등 모든 선수가 열심히 싸워줘 고맙다. 1회전부터 스타팅 멤버를 한 번도 안 바꾼 건 선수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장 구황이 타율이 1할에 못 미칠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팀의 기둥이었기에 끝까지 믿었다. 2003년 감독을 맡은 이후 재작년 봉황대기에서 우승한 후 전국 대회로는 두 번째 우승이다.

힘든 훈련 견딘 선수들 고마워

▽천안북일고 이정훈 감독=찬스를 못 살린 게 너무 아쉽다. 한두 점만 쫓아갔어도 역전할 수 있었는데 팀 배팅이 안 됐다. 거의 매회 안타를 치고 주자를 내보냈지만 모두 무산됐다. 상대 투수 문성현이 잘 던졌다. 위기 때 대처하는 능력이 고등학생답지 않게 훌륭했다. 지난해 12월 감독에 부임했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팀이 정비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겨울 내내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훈련은 밤 12시 이전에 끝난 적이 없고 코치들은 오전 1시 이전에 자본 적이 없다. 힘든 훈련 견뎌준 선수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이제 목표는 이 대회의 매회 우승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