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의 뱃노래 가물 거리며~” 86년 KS 해태-삼성전서 히트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8시 40분


프로야구 응원가 1호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각 구단을 상징하는 응원가는 없었다.

프로야구에 팀을 상징하는 응원가를 처음 도입한 팀은 해태였다. 80년대 프로야구의 아이콘으로 남은 해태 타이거스 임갑교 응원단장이 호루라기 하나만 들고 전국을 돌 때 조금씩 불려지던 ‘목포의 눈물’이 해태를 상징하는 노래가 된 것은 86년 한국시리즈였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원정 도중 대구에서 해태 선수단의 버스가 불타면서 묘하게 타오른 지역감정과 응원의 열기는 잠실에서 열린 6차전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해태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7회부터 잠실구장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공의 뱃노래 가물 거리며∼”하며 ‘목포의 눈물’이 메아리쳤다.

당시 정권에서 탄압받던 ‘선생님’ 김대중을 연상시키는 ‘목포’와 ‘눈물’은 묘하게 해태 팬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졌다. 이후 해태하면 떠오르는 응원가가 됐다. 그날 돌림노래로 ‘목포의 눈물’이 잠실벌을 메아리치자 하얗게 뜬 삼성 선수단의 얼굴 표정은 응원가의 효과가 어떤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80년대 왕국을 건설한 해태는 여러 면에서 다른 구단의 모범이 됐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해태 선수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프리미엄이 생길 정도였다.

호남 열성팬들의 홈,원정을 가리지 않는 응원과 해태 선수들의 투지 붉은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는 ‘목포의 눈물’과 함께 야구를 뜨겁게 했다. 스포츠 전문지에서 1면은 무조건 해태,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되면 무조건 선동열에 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삼성이 해태를 따라하고 나섰다. 지역을 상징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따라 부르기 좋고 템포까지 빠른 응원가를 찾았다. 이때 삼성에서 생각했던 노래가 ‘신라의 달밤’이었다. 현인이 불렀던 이 노래는 연고 지역을 상징했고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서 괜찮아 보였지만 이 노래는 별로 불려지지 않았다. 응원가의 성패는 팀의 성적, 팬의 충성심과 연관이 있었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지구상에서 한신의 고시엔 레드삭스의 보스턴과 함께 3대 극성지역으로 손꼽히는 부산에서 드디어 새로운 움직임이 생겼다. 구덕야구장 시대를 마감하고 사직으로 옮긴 86년이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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