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딴 北선수 통역도 저희가 맡았죠”

  • 입력 2008년 8월 21일 02시 50분


첫 공식언어된 한국어 동시통역 방송인 출신 배유정 씨

이전 올림픽까지는 없었다. 베이징에는 있다. 메달리스트 공식 기자회견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바로 한국어 동시통역사다. 한국어는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공식 통역 언어가 됐다.

최민호가 유도 남자 60kg급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선물했던 9일. 기자회견장에 앉아 있는 최민호 옆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통역은 유창했고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연극배우, 라디오 DJ, TV 아침방송 진행자, CF모델로 활동했던 배유정(44) 씨다. 이화여대 동시통역대학원 교수인 그는 선후배 5명과 함께 베이징에 왔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에서 한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어 통역사를 모집했다.

“BOCOG에서 한국이 이렇게 좋은 성적을 올릴 줄 몰랐나 봐요. 6명이 메인프레스센터 콘퍼런스룸과 메달이 나오는 경기장을 모두 커버해야 되는데 초반에는 메달이 쏟아져 정신이 없었어요. 다음 올림픽에는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하라고 해야겠어요, 하하.”

방송인 출신답게 언변이 뛰어난 배 교수는 최민호의 동시통역을 시작으로 왕기춘, 김재범, 정경미 등 다른 유도 메달리스트들 옆 자리도 지켰다.

“처음 한 종목을 맡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그 종목을 배정하더라고요. 스포츠 분야에는 전문 용어가 많아 한 종목을 계속하는 게 도움이 돼요.”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 통역도 맡았던 배 교수가 더 바빴던 데는 북한도 일조했다.

“북한은 동시통역사가 없어 BOCOG에서 저희에게 요청을 했어요. 후배 둘이 북한 여자 역도와 체조 금메달 현장에 있었는데 선수들이 계속 ‘장군님’을 언급해 영어 통역이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떠맡은 북한 선수 통역이라 처음에는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나 걱정도 많이 했어요. 에이전시에 문의해 보니 문제가 생기면 BOCOG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해서 안심했죠.”

20일 한국은 처음으로 메달을 못 땄다. 배 교수도 처음으로 여유가 생겼다.

“오늘 저녁에는 동료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시내 구경도 해야겠네요.”

활짝 웃으며 인터뷰를 마친 배 교수는 내달 6일 개막하는 장애인올림픽에서도 동시통역사로 활약한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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