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투혼’ 배드민턴 여자복식 12년 만에 은메달

  • 입력 2008년 8월 16일 02시 59분


이경원과 짝을 이룬 이효정(왼쪽)이 2008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결승에서 중국의 두징-위양 조에 네트 앞에서 스매싱을 날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0-2로 져 16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경원과 짝을 이룬 이효정(왼쪽)이 2008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결승에서 중국의 두징-위양 조에 네트 앞에서 스매싱을 날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0-2로 져 16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꽃송이처럼 하얀 셔틀콕은 제 몸을 파르르 떨며 날아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라켓을 잡은 소녀들은 무게 5.5g의 셔틀콕에 소망을 담뿍 실어 날렸다. 20년 가까이 흐른 뒤 그들은 나란히 꿈의 무대인 올림픽 결승에 나섰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12년 만에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 결승에 진출한 이경원(28)과 이효정(27·이상 삼성전기)은 중국에 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 스쿼시 라켓으로 힘을 기르다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의 맏언니 이경원은 경남 마산시 완월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라켓을 잡았다. 특유의 감각 있는 경기력으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키가 문제였다. 선수로서는 작은 160cm에 그쳤기 때문. 더군다나 타고난 체력도 약했다.

한계를 깨달은 이경원은 가방에 스쿼시 라켓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배드민턴 라켓보다 무거운 스쿼시 라켓을 휘두르며 악착같이 힘을 길렀다. 홀로 1남 2녀를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 디스크 판정을 받다

이경원과 이효정이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것은 2005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경원은 수비와 집중력이 뛰어나고 181cm의 장신인 이효정은 큰 키를 앞세운 네트 플레이가 능하다. 서로의 장단점을 커버하는 환상의 조합인 것이다.

둘은 곧 좋은 성적을 냈다. 2005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데 이어 그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거뒀다.

하지만 금세 위기가 닥쳤다. 2006년 코리아오픈.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오른 이들은 대회 준결승에서 이효정이 평범한 클리어 동작을 하다 돌연 허리 통증을 호소해 경기를 포기했다. 큰 부상이 아닐 것으로 예상됐지만 다음 날에도 허리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허리 디스크였다. 복식은 혼자 할 수 없는 일. 이효정의 부상은 이경원에게도 치명타였다. 디스크 치료를 위해 이효정은 라켓을 놓게 되고 결국 이들은 이별했다.

단짝이 없어서일까. 이경원도 2007년 5월 손가락 부상을 당했고 결국 슬럼프에 빠졌다.

○ 함께할 미래가 남았다

각자 부상의 그늘에서 벗어난 이경원과 이효정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하나가 됐다. 잠시 떨어져 있었기에 서로의 가치와 소중함을 더 알게 됐고 더욱 단단해졌다. 김중수 대표팀 감독은 “둘 사이가 잉꼬부부 못지않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일을 냈다. 올림픽 못지않게 어렵다는 전영오픈에서 3월 우승한 것. 특히 중국의 가오렁-자오팅팅 조(세계랭킹 7위), 양웨이-장제원 조(3위)를 꺾고 결승에 오른 뒤 두징-위양 조(2위)마저 누르고 정상에 선 것이다.

5개월이 흐른 뒤 랭킹 4위인 이경원과 이효정은 15일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다시 천적 두징-위양 조를 만났다.

이날 이경원은 1세트 8-9로 뒤진 상황에서 오른발에 부상을 당했다. 잠시 경기가 중단됐고 이경원은 압박붕대를 감고 다시 코트에 섰다. 아픈 표정 하나 없이 얼굴은 담담했다. 동생 이효정에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부상 투혼에도 불구하고 0-2로 졌다.

이경원과 이효정은 말없이 꼭 껴안았다. 함께할 미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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