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마라톤을 보고-전문기자 칼럼

  • 입력 2007년 3월 18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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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가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동아일보]
▲이봉주가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동아일보]
▲이봉주가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자신의 둘째 아들을 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이봉주가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자신의 둘째 아들을 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18일 오전 8시 힘차게 스타트 하고 있다. [사진=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18일 오전 8시 힘차게 스타트 하고 있다. [사진=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으랏차차! 봉달아! 눈물나게 하는 봉달아!

'봉달이' 이봉주를 보면 속이 짠하다. 안쓰럽다. 출발 전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냥 뭐~"하며 얼버무린다. 그건 내심 자신 있다는 얘기. 몸놀림도 가벼워 보였다. 쪼글쪼글한 얼굴, 덥수룩한 턱수염. 검은 선글라스와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몸은 마른 명태처럼 기름기가 거의 없다. 마치 '뼈에 가죽만 입혀 놓은 것' 같다.

마라토너에게 35km지점은 아득한 경계다. 일단 그 경계를 지나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도 가도 사막 길. 타는 목마름. 휘청거리는 다리. 터질 것 같은 심장. 길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나타났다가 또 사라진다.

키루이는 갓 뽑은 새 차나 같다. 그는 기껏 공식대회에서 이번까지 5번 완주했을 뿐이다. 2만~3만km쯤 달린 '씽씽 잘나가는' 세단이라고나 할까. 개인 최고기록도 지난해 로테르담에서 세운 2시간6분44초. 이봉주(2시간7분20초)보다 36초 빠르다. 더욱이 그는 젊다. 이봉주와는 10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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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는 너무 많이 뛰었다. 한마디로 40만km쯤 뛴 승용차라고 할 수 있다. 16년 동안 35번 완주(황영조는 5년 동안 8회)는 기네스북에 올라야할 정도다. 마라토너가 한번 대회에 출전하려면 최소 매주 330km씩 12주 동안은 달려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 이봉주는 37번(2번 도중 기권) 대회에 출전했으므로 훈련거리만도 14만6520km(3960km×37)에 이른다. 여기에 실제 대회에서 달린 거리(42.195×35+하프마라톤 및 역전대회) 1703.41km를 더하면 14만8223.41km나 된다. 지구를 약 3.7바퀴(지구 한바퀴 약 4만km) 돈 셈이다.

마라톤의 엔진은 폐와 심장이다. 20대 남성의 평균 최대산소섭취량(1분간 몸무게 1kg당 산소섭취량)은 45ml. 이봉주는 78.6ml로 황영조의 82.5ml보다 약간 적다. 무산소성 역치란 것도 있다. 어느 순간 피로가 급격히 높아지는 시점을 말한다. 가령 이 값이 50%라고 한다면 신체 능력이 50%를 발휘할 때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운동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봉주의 무산소성 역치는 70%로 황영조의 79.6%보다 낮다.

이봉주는 35km 지점에서 무산소성 역치가 한계점을 지났다. 기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은 바닥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극한 상황. 하지만 피와 땀과 눈물이 남아있었다. 꺾이지 않는 의지가 있었다. 끈기와 투지로 무소의 뿔처럼 달렸다. 키루이는 너무 앞서 나갔다.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35km 경계에서 그는 자신의 젊음을 과신하고 '오버'했다. 결국 키루이는 이봉주보다 25초 뒤에 들어왔다. 약 137m 거리. 봉달이는 이 137m의 차이를 몸이 아닌 '정신의 근육'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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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고행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고행을 함으로써 저마다 꽃을 피운다. 이봉주도 그렇게 '바늘로 우물을 파듯' 꽃을 피웠다. 마라톤은 '몸으로 쓰는 시'다. 참다 참다 마침내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 같은 것.

봄내 가득한 서울 길. 살갗을 간질이는 싱그러운 바람.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이 거닐던 종로 청계천길. 그 길에 '사람 꽃'이 가득했다. 2만4000여 마스터스들이 그 길을 신나게 달렸다. 어린아이들이 논둑 밭둑길을 달리듯 천진난만하게 달렸다. 다들 몸을 써서 한 소식 얻었다. 몸을 부려 꽃을 피웠다. 허물을 또 한 꺼풀 벗었다.

탱탱 불어터진 목련 꽃망울. 누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터질 것 같다. 여기 저기 우르르 피어난 매화꽃. 길가 나뭇가지엔 연두 빛 새싹들이 아장아장 병아리 부리같이 뾰족하게 돋아나고 있다. 몸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다. 몸에 길이 있다. 꿈이 있다. 봄이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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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기자 mars@donga.com

*이봉주 결승선 통과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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