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응원 나서보니]"우린 모두 하나" 이 감동 영원히

  • 입력 2002년 6월 15일 22시 59분


버스 지붕위 응원단
버스 지붕위 응원단
“3·1운동 때 우리 선조들의 심정이 이랬을 겁니다.”

14일 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네거리. 월드컵 한국-포르투갈전 응원을 나온 소영국씨(36·종로구 운니동)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서울시청 앞 광장과 세종로 네거리 일대는 거대한 ‘장터’로 변했다. 80여년 전 3월 전국 곳곳의 장터에서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칠 순간을 기다리던 조상들처럼 사람들은 붉은 셔츠에 태극기를 휘감고 모여들었다.

회사원 우시만씨(40)는 경기 과천의 집에서 1시간여 동안 자전거를 타고 왔고 한달 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종아리에 깁스를 한 황정민양(9·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도 삼촌 무동을 타고 인파에 합류했다.

회사원 양병선씨(31)는 “응원이라는 순수한 의도 하나로 수십만의 사람들이 똑같은 색의 옷을 입고 똑같은 동작과 노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 속에 내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 시작 전 승리 기원 공연을 한 인디밴드 ‘크라잉 넛’은 “여러분은 한국의 12번째 선수입니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리고 오후 8시반 서울 거리에 나선 140여만명은 든든한 ‘장외 선수’로 돌변했다.

붉은 물결 위로 하얀 태극기가 넘실거렸다. 붉은 셔츠를 입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젊어지고 싶어 거리로 나왔다는 천영식씨(55·서울 은평구 녹번동)도 어느새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응원 리듬을 타고 있었다.

가로 13m, 세로 9m의 대형 스크린은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에 충분하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 사각(死角)에 있어서, 가로수에 가려서 공이 어디로 굴러가는지, 누가 잡았는지 제대로 볼 수 없는 시민들은 주위의 함성에 동물적으로 반응했다.

집에서 편하게 TV로 경기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대학 1학년생인 이상민씨(22)는 “학교 축제에서도 느끼지 못한 자유를 여기서 찾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심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그 느낌만으로도 즐겁다”고 답했다.

강주희씨(39·여·경기 고양시)는 “딸(9)에게 다시 없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함께 나왔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렸다. 광장은 역사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이날 거리에서 붉은 셔츠를 사 입은 안순희씨(55·서울 중구 신당동)는 같이 온 동네 친구 2명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연방 터졌다.

이건일씨(67·서울 중구 무교동)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이 힘의 원천을 끌어내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다”고 말했다.

수천발의 폭죽이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만세”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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