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500일 약속’ 지켰다

  • 입력 2002년 6월 15일 01시 49분


거스 히딩크 감독(56)이 2000년 12월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는다고 했을 때 국내 축구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장이라고 하더라도 1년6개월 안에 한국 축구의 수준을 국제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었다. 한때 대표팀을 맡았던 감독들의 의견도 부정적인 쪽이었다.

그로부터 딱 1년 반 뒤인 오늘. ‘네덜란드에서 온 축구 산타클로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한국 축구사상 최고의 성적인 월드컵 16강을 선사했다. 과연 그 짧은 기간에 한국 축구를 완전히 바꿔놓은 비결은 무엇일까.

▽문제점 꿰뚫은 족집게 진단〓국내 축구전문가들도 수십년간 파악하지 못했던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제대로 집어냈다. 정신력과 기술은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문제가 없다는 게 그의 평가. 히딩크 감독은 체력도 아주 좋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90분동안 뛸 수 있는 ‘축구 체력’에선 100점 만점에 80점도 안 된다고 봤다. 또 세계적인 강팀과 싸워본 경험이 없어 강호를 만났을 경우 선수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대는 것도 월드컵 16강이란 대업을 이루기 위해선 꼭 치유해야 할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 같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완전히 찾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명의’의 명 처방〓문제점 분석과 함께 치밀한 장기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2001년부터 2002년 5월 말까지 크게 3단계, 그리고 세부적으로 여러 단계에 걸쳐 치밀하게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 프로그램엔 체력, 정신, 심리적 요인 등을 수십가지 세부요인으로 분류해 선수들의 반응을 체크해 다시 개별적인 처방을 내리기까지 했다. 체력보강을 위해 그동안 ‘체력훈련〓웨이트트레이닝’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고 독특한 방법을 도입했다. 축구에 필요한 모든 체력 요소가 들어 있는 ‘셔틀런 테스트(왕복달리기)’가 가장 대표적인 예. 또 4 대 4, 6 대 6, 8 대 8 미니게임을 인터벌트레이닝으로 시켜 ‘축구체력’을 향상시켰다. 깨지더라도 강팀과 맞붙어야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 하에 유럽의 강호들과 계속 싸운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

▽축구는 과학이다〓운동생리학과 물리치료를 전공한 ‘운동 과학자’들을 도입해 한국 축구에도 과학을 주입했다. 그동안 국내 감독들은 선수들의 컨디션이 어떤지를 주관적으로만 판단해왔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훈련 중에 주기적으로 심박수를 체크, 그 변화에 따라 선수들의 컨디션 상태를 파악했다. 심박수는 선수들이 100%로 훈련하고 있는지 아니면 꾀를 부리고 있는 것까지 체크가 가능해 어떤 선수가 꾀를 부리면 과감히 주전에서 빼기도 했다. 물론 ‘베스트11’의 결정도 철저히 과학적인 데이터에 따른다. 또 올 초부터는 훈련 강도를 주기적으로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전력을 상승시키는 ‘주기화 원리’를 이용해 월드컵 본선 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맞춰왔다. 전문 물리치료사를 통해 부상한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 부상회복 속도를 높인 것도 ‘스포츠 과학’의 힘이다.

▽실력으로 말하자〓축구에 실력 외엔 아무것도 개입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국내 프로리그와 해외리그를 돌며 최고의 멤버를 차출했다. 이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주전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23명으로 최종엔트리를 짰다. 그리고 세계무대의 주류인 ‘토털 사커’를 완성하기 위해 전원공격 전원수비가 가능하도록 대부분의 선수를 ‘멀티플 플레이어화’했다. 수비수, 공수 미드필더, 최전방 공격수 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유상철, 송종국, 박지성 등이 대표적인 만능플레이어.

인천〓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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