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마라톤]얼치기 코스분석이 화근

  • 입력 2000년 10월 1일 18시 54분


한국 체육의 최고 기구인 대한체육회는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이봉주 하나만 금메달을 따면 이번 올림픽은 성공작”이란 얘기를 공공연히 밝혔다. 그만큼 마라톤에 쏠린 국민의 열망은 엄청났고 코오롱을 이탈한 이봉주 등이 무적 선수로 활약할 당시 특별 지원금을 지원한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였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전폭적인 지원도 마찬가지. 삼성이 회장사를 맡고 있는 연맹은 마라톤에서 가장 우승 가능성이 높았던 이봉주를 위해 사실상 삼성전자팀을 만들었고 5월에는 4명의 대표팀 감독과 연맹 사무국장이 포함된 대규모 호주 현지 코스 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과 투자에도 불구하고 한국 마라톤은 손기정―황영조의 올림픽 영광을 여지없이 추락시키고 말았다.

이번 올림픽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 부족. 정확한 코스 분석과 그에 맞는 훈련 및 레이스 운용 작전을 수립해야 하는 지도자들은 9일 동안 호주 현지에서 코스를 답사한 뒤 이구동성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복이 심한 역대 올림픽 코스 사상 최악의 코스로 포장도로의 크로스컨트리대회”라며 “기록보다는 체력 싸움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이어 곧바로 자신이 책임진 선수들을 이끌고 언덕이 많은 강원도로(백승도 정남균), 지리산으로(오미자), 유성 마티고개(이봉주)로 들어갔고 호주 현지훈련에서도 사실상 체력 훈련에 전력을 기울였다.

올림픽 개막 한달 전 호주 나라에서 전지훈련을 가진 대표팀은 그때까지도 “스피드가 우수한 아프리카 선수들에 비해 체력이 뛰어난 한국이 유리하다”는 ‘장밋빛’ 전망을 되풀이했다.

이들이 자신들의 코스 분석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4일 여자마라톤이 끝난 뒤. 스피드 경쟁보다는 후반 체력싸움에 중점을 두고 훈련해 온 한국선수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과 선수들의 메달 욕심까지 겹쳐 복병으로 꼽히던 정남균은 무리한 훈련으로 다리 근육이 피로 골절인 상태에서 출전하는 등 선수들의 컨디션이 대회 직전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팀의 구성도 기형적. 남자 3명, 여자 1명 등 4명의 선수로 진용을 갖춘 대표팀은 각 선수들을 지도해온 감독들의 신경전으로 결국 기존 코치들이 자신의 선수를 그대로 지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때문에 한국 선수들끼리도 정보 교환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고 훈련도 제각각으로 이뤄졌다.

이런 모든 과정을 지휘 감독해야 할 연맹은 선수 지도를 감독들에게 일임한 채 안이한 자세로 일관했고 결국 올림픽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드는 치욕을 자초했다.

<김상호기자>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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