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월드컵 그때 그기사 ③]「칭기즈칸 축구」를 하라

  • 입력 1999년 6월 11일 10시 31분


수수께끼 하나. 칭기즈칸은 어떻게 자기들보 다 수백배나 큰 세력을 150년동안 지배할 수 있었을까.

칭기즈칸이 대제국을 건설했을 때 몽골인구는 고작 100만명, 기마군단은 20만명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칭기즈칸과 그 아들 손자들이 정복한 문명세계의 인구는 약 1억명.

당시 세계인구 3억명 중 3분의 1을 자신의 말 발굽아래 두었다. 그러나 정복한 땅의 크기 를 따져보면 더 입이 벌어진다. 1227년 칭기즈칸이 죽을 때 정복면적은 486만 평방마일.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218만 평방마일의 두배가 훨씬 넘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이 「무식한」 오랑캐(?)집단이 멀리 동쪽의 고려 에서부터 서쪽으로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상 최대제국을 최단시간에 건설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칭기즈칸은 평생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 그 부하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수수께끼 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축구인구를 가진 나라는 어디일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국. 초등학교에서부터 프로선수까지 정식 등록선수만도 수백만명이 넘는다고 하면 믿길까. 물론 정확한 숫자는 중국축 구협회에서도 알 수 없다.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

100미터를 10초대에 뛰는 축구선수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9초대를 뛰는 선수도 있다는 게 중국 사람들의 얘기. 그런데 그런 중국이 왜 국제무대의 성적은 좋지 않을까. 월드컵무대에 단 한번도 나가지 못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 보다 축구인구나 저변으로 봐서 새발의 피에 불과한 한국에 왜 그렇게 사족을 못쓸까.

중국은 90년 이후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에서 한국을 한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물론 그 전에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세계에서 싸이클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도 중국이다. 그러나 중국이 올림픽 싸이클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축구도 이런 이유일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축구도 그렇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가 많더라도 「따로 국밥」들이 모이면 3류팀이 되는 게 축구다.

그만큼 팀워크가 중요하고 전술전략이 중요 하다. 그러나 아무리 작전이 좋아도 축구선 수가 투쟁성과 원시성을 잃으면 「얼치기 선수」가 된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자들은 몽골군의 강점을 보통 3S로 요약 한다. 기동성(Speed), 단순성(Simplicity), 자신감(Self-Assurance)이 바로 그것. 이것은 축구도 흡사하다. 그리고 축구의 매력은 바로 이 3S에서 나온다.

몽골인들은 단순하지만 고정관념이 없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점에 더 이상 회의하지 않는다. 단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돌진 한다. 초원에서의 삶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모른다. 항상 임기응변에 능하고 창조적이어야 살 수 있다. 끊임없이 자연환경 에 자신을 맞춰야 살 수 있다.

그들은 이길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한다. 도덕적이든 비도덕적이든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그래서 사고방식이 변화무쌍하고 극히 창조적이다. 그 당시 유럽기사들은 매복후퇴, 우회전술 같은 것들은 비겁하다고 아예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몽골인들의 평균시력은 4.0이라고 한다. 수십 리 밖에서 밥짓는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지 금도 세살만 되면 양을 지키고 다섯살이 되면 말을 탈 줄 안다. 이것이 바로 몽골민족의 원시성 혹은 야수성이다. 단순성은 바로 이러한 야수성에서 나온다.

◇ 브라질, 임기응변 능하고 독일은 냉정 침착

학자들은 흔히 축구를 원시시대 「집단사냥」 의 흔적으로 본다. 「공」은 곧 「먹잇감」이다. 사냥꾼들은 먹잇감을 쫓아 이러저리 몰려다닌다. 축구선수들도 골을 넣기 위해 공(먹잇 감)을 필사적으로 쫓는다.

원시시대의 사냥에서 육식공룡 같이 무시무 시한 것들은 힘만으로 안된다. 머리를 써야 하고 작전을 수립해야 한다. 협동이 필요하다.

축구도 무턱대고 빠르다고, 용감하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역시 작전이 필요하다. 사냥에서 먹잇감의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듯이 축구도 순간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임기응변이 능해야 한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순간적응에 빨라야 한다.

브라질이 축구를 잘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 적응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독일이 잘하는 것은 물러날 때와 진격할때를 구분하는 작전력이 뛰어난데다 먹잇감이 흥분한다고 같이 흥분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 다. 참으로 냉정하고 침착하다. 그러나 야수와 같은 투쟁성과 원시성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앞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내릴 때가 됐다. 왜 칭기즈칸은 강한가. 어떻게 적은 숫 자로 그 많은 사람들을 꼼짝못하게 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야수와 같은 투쟁심과 원 시성. 왜 중국팀은 그 많은 숫자를 갖고도 세계 축구무대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까.

왜 맨날 한국에 지기만 할까. 그것도 간단하다. 투쟁심과 원시성의 부족.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축구에는 강팀이 하위팀에 물리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그것도 사냥감을 얕보는데서 온, 투쟁심과 원시성 부족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어떤 사냥감이라도 목숨이 왔다 갔다할 때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왜 있잖은가.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 다는 말. 어쨌든 그래서 축구는 재미있다.

김화성〈체육부기자〉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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