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민 인문학적 감성-양식 채우는 곳간 되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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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힘으로 ‘타오르는 강 문학관’ 개관 문순태 소설가 인터뷰
영산포 무대 恨의 민중사 그려내… 현대문학 수작 이름 내걸고 개관
소설 속에 지역 문화 콘텐츠 형상화… 문학제 열어 지역 문학 부흥시킬 것
전국의 문인 나주 머무는 계기 되길

전남 나주시는 일제강점기 대지주였던 일본인 구로즈미 이타로의 가옥을 ‘타오르는 강 문학관’으로 재단장해 내년 3월 개관한다. 나주시 제공
전남 나주시는 일제강점기 대지주였던 일본인 구로즈미 이타로의 가옥을 ‘타오르는 강 문학관’으로 재단장해 내년 3월 개관한다. 나주시 제공
“문학관이 나주시민의 인문학적 감성과 양식을 채우는 곳간이 되었으면 한다.”

평생을 창작에 진력해온 작가에게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내년이면 작가 등단 50년이 되는 문순태 소설가(84·사진)에게는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이 그렇다. 영산강과 영산강 유역 중심 도시인 전남 나주시 영산포를 무대로 쓴 이 소설은 고향과 한(恨)의 민중사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한국 현대문학의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등장인물만 200여 명에 200자 원고지 1만1600장이 넘는 대작이다. 1975년 연재를 시작해 37년 만인 2012년 전 9권을 완간했다. 작가는 완결판 서문에 “작가가 된 후 지금까지 오로지 ‘타오르는 강’을 붙들고 씨름하듯 낑낑대다 오랜 짐을 내려놓았으니 후련하다”고 썼다. ‘타오르는 강’을 이름으로 내건 문학관이 내년 3월 나주에 개관한다. ‘타오르는 강 문학관’이 특별한 것은 나주시민들이 주축이 돼 건립에 나섰다는 것이다. 학술대회를 열고 시에 문학관을 만들어 달라며 서명운동까지 벌여 결실을 보게 됐다. 다음은 문 소설가와의 일문일답.

―고향인 담양에서 나주로 옮기게 됐는데….


“대학에서 정년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18년 만에 나주로 가게 됐다. 내 삶이 영산강 발원지인 담양에서 강의 중심부인 나주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주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

“처가가 영산포 부덕리다. 처가 과수원집에 머물면서 ‘타오르는 강’을 집필했다. 나주학회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타오르는 강’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타오르는 강 학술대회’를 두 차례나 열었다. 나주축제 기간에는 ‘타오르는 강’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올 4월 홍어 시 100편을 모아 ‘홍어’라는 시집을 냈는데 영산포발전협의회가 출판기념회를 열어주는 등 나의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져줬다.”

―문학관은 어떻게 꾸며지나.

“영산포에 일제강점기 대지주였던 구로즈미 이타로의 가옥이 있는데 나주시가 가옥을 사들여 리모델링했다. 소설에 영산포, 왕곡, 다시 등 3개 면의 농토를 동양척식회사가 점거하면서 일어났던 ‘나주 궁삼면농민운동’이 중심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터라 일제 지주 집에 문학관이 들어선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문학관에는 작업실과 ‘타오르는 강’의 초고 및 작품과 관련된 자료 등을 보여주는 전시실, 소장 서적 3000여 권을 비치하는 작은 도서실로 꾸며진다.”

―그동안 운영했던 ‘생오지문예창작촌’은 어떻게 되나.

“18년을 머물면서 문예창작촌을 만들고 창작대학을 열어 41명을 등단시킨 것에 보람을 느낀다. 솔직히 고령이라 창작촌 관리가 어렵다. 그렇지만 가급적 그대로 존속시키고 싶다. 법인은 ‘문순태 문예창작연구회’로 바꾸어 제자나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문학 연구 활동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타오르는 강’은 어떤 소설인가.

“신문기자 시절 ‘전라도 땅’ 다큐를 연재할 때 나주 종가 취재를 하다 우연히 노비 문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노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노비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한 최초의 소설이다. 주제는 민중의 한을 체계화했다고나 할까. 개별적인 한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수많은 한이 한데 모이면 큰 힘으로 작용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노비 출신 등 등장 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사라져 가는 전라도 토박이말을 최대한 살려 썼다. 녹음기를 들고 시골장과 산골마을을 다니며 토박이말을 채록했다. 그래서 부록 10권으로 ‘소설 속 토박이말 사전’을 펴낼 수 있었다.”

―소설에서 인문학적 가치가 왜 중요한가.

“소설을 쓰면서 영산강과 유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과 기록되지 않은 사건까지 충실하게 조사했다. 그래서 소설 속에 나주의 역사와 문화적 콘텐츠가 풍부하다고 자부한다. 당시 민초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으며 어떤 역사적 사건을 체험했는지 철저하게 고증해서 형상화했다. 소설에서 인문학적 가치를 찾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공간들을 오늘날에 맞게 활용하면 관광자원이 될 수 있고 역사 문화 자료들은 문학 기행이나 지역 답사의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학관이 지역민에게 문학적 감성을 높이고 인문학적 소양을 채우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1년에 한 번 ‘타오르는 강 문학제’를 열어 지역 문학인과 영산강 문예부흥시대를 여는 주춧돌을 놓고 싶다. 문예창작교실을 통해 문인을 배출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독서클럽과 인문학 강좌도 열겠다. 가능하다면 문학관에 레지던스 창작실을 마련해 전국의 많은 문인이 나주에 머물면서 작품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인문학적 감성#타오르는 강#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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