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살이로 고물가 견디는 MZ세대…‘갓생’ 보다 ‘현생’

  • 뉴시스
  • 입력 2023년 10월 30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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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여력 줄어든 청년들의 '고육지책'
"청년 문제 본질적인 해결책 찾아야"

“카드 쓸 때랑 다르게 돈이 모이고 없어지는 게 보이잖아요. 소비를 통제하게 되죠.”

4년 차 직장인 박모(32)씨는 지난 6월부터 ‘현생’을 살기로 했다. 월급을 받으면 현금 80만원을 인출하고 이를 하루 단위로 다이어리에 나눠 넣어뒀다가 그날은 그 현금만 꺼내 쓴다. 일주일에 20만원, 적게는 하루에 3만원 현금으로 당일 식사·음료 등을 해결하는 삶을 5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30일 뉴시스 취재 결과 최근 고물가에 청년들 사이에서 이른바 ‘현생’이 각광받고 있다. 현금 생활의 약자인 현생은 카드 대신 현금만 사용하는 소비 습관을 말한다.

‘현금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공유되는 게시글만 2만2000여개에 달하고,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는 현생 챌린지 영상 조회수가 약 7000만회를 찍었다.

취업 준비생인 유모(27)씨는 ‘현생’ 3개월 차다. 그는 “하루 단위로 가진 돈을 생각하다 보니 더 절약할 수 있게 됐다”며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괴로웠는데 결국 익숙해졌다. 지금은 적은 돈이라도 남은 돈을 매일 모으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3년 차 직장인인 김민우(30)씨도 “카드로 매번 결제하다가 한 달 후 돌아보면 쓸모없는 지출이 너무 많고는 했다”며 “소비를 줄여야겠다 생각만 하다가 실패하고 스트레스받는 패턴의 반복이었는데, 이 방법으로 확실히 소비를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소비 트렌드는 최근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소비 여력이 줄어든 청년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부지런한 삶을 의미하는 MZ세대 유행어 ‘갓생’(God+인생)과 달리 고육지책에 가깝다는 것이다.

3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계의 여윳돈인 가계(도시, 1인 이상) 월평균 흑자액은 118만1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4만4000원)에 비해 12.1%(16만3000원) 줄었다.

해당 흑자액은 소득에서 세금·연금 보험료·이자와 식료품을 산 뒤 남은 금액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흑자액의 폭이 지난해 3분기 이후 4분기 연속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소비액 자체는 늘었다. 2분기 가계의 소비 지출은 월평균 276만4000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8%(7만6000원) 늘었다. 흑자는 줄었으나 소비액은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생이 청년들의 계층 이동이 불가능에 가까워진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년 세대가 ‘영끌’해 주식·코인·부동산 투자에 나서 계층 이동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최근에 막혔다”며 “실패를 맛봤던 세대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자기 만족적 취향을 갖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챌린지가 청년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며 “고용 안정 등이 보장돼 청년들이 열심히 살면 계층 상승 기회가 생기는 시스템을 기성이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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