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법 앞에 평등한 세상을 원했던 ‘한비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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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 ‘법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일군의 정치 사상가들을 통틀어 법가라고 합니다. 이들은 인의와 도덕으로 세상을 다스리자는 유가의 사상에 맞서, 인간이란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이므로 상과 벌, 즉 법에 의해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전국시대 군주들에게 발탁되어 자신들의 뜻을 실질적으로 펼치려 했습니다. 그중 한비자(韓非子·?∼기원전 233)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한비자의 본명은 한비(韓非)입니다. 어려서부터 두뇌가 명석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나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어 외톨이로 컸다고 합니다. 일찍이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문하에서 배워, 법에 의한 부국강병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강대국 진나라에 많은 땅을 뺏기고 멸망의 위기에 있던 조국 한나라 조정에 수차례 간언을 하지만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답답해진 한비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 훗날 한비와 그 후학들이 쓴 논저 ‘한비자(韓非子)’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의하면 진나라의 왕(훗날 시황제)은 우연히 한비가 쓴 고분(孤憤)과 오두(五蠹) 편을 보고 ‘이런 인재가 있어야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서 감동했다고 합니다. 이후 진나라 왕은 한나라를 침략해 한비를 데리고 귀국합니다. 하지만 이미 진나라에서 일하고 있던 한비의 오랜 친구이자 순자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이사는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을까 두려워 한비를 모함합니다. 이사의 계략으로 한비는 옥에 갇히고 결국 독을 마시고 생을 마감합니다.

한비가 살았던 중국 전국시대는 여러 나라들이 세력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하던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한비는 ‘인성이기설(사람의 본성은 악하고 이기적이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법치(法治)를 주장했지만 법을 어기는 자는 누구든지 예외 없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평등의 정신을 내세웠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상적인 국가는 법의 존엄성이 살아 있는 강한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군주의 권위가 바로 서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든 세력을 넓히고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전제적인 지배를 확장하려던 제후들에게 한비를 비롯한 법가의 사상은 매우 유효했습니다. 한비는 여러 법가의 사상들을 비판, 종합하여 법가 이론을 완성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나라에서 그를 모함했던 이사에 의해 구체적으로 적용됩니다. 이후 등장한 통일제국 한(漢)나라의 실질적인 운영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상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법가에서 말하는 ‘법치’는 군주가 제정한 법을 신하와 백성들이 따라야 한다는 개념이라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과 같은 ‘법치’의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오는 17일, 제헌절을 맞이하며, 법의 엄격함뿐만 아니라 공정함을 강조했던 법가와 한비의 정신만큼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법 앞에 평등한 세상#한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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